"삼성 주식 팔아서 나누자"…돌변한 '현대家 백기사'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입력 2024-08-18 13:09
수정 2024-08-19 10:33
이 기사는 08월 18일 13:0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삼성물산 주식 팔아서 'N분의 1' 하자."

KCC의 창업주인 고 정상영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이다. KCC는 본업인 페인트 사업보다는 '백기사',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재계에 이름을 날렸다. 2003년 8월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현 HMM) 등의 지분을 매입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 회사는 현재 삼성·현대가(家) 우호주주로 삼성물산, HD한국조선해양 지분을 적잖게 쥐고 있다. 주가가 치솟은 두 회사 지분을 처분하자는 주주들의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KCC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9.57%) 가치는 2조4154억원으로 집계됐다. 삼성물산 지분가치는 올들어 지난 6월 말까지 2126억원가량 불었다. 지난 6월 말 보유한 HD한국조선해양 지분 3.91% 가치는 4389억원에 이른다. HD한국조선해양 지분가치는 올들어 6월 말까지 1048억원어치가량 불었다. 보유한 미국 실리콘 자회사 모멘티브 퍼포먼스 지분가치는 1조6750억원에 이른다. 모멘티브는 비상장사라 시장가치 변화는 없었다.

이들 보유 지분의 가치합계는 4조2000억원을 웃돈다. 지난 16일 KCC의 시가총액(2조6882억원)을 넘어선다. 삼성물산을 비롯한 비주력 자산을 유동화해서 기업가치를 한층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KCC가 삼성물산 주식을 처음 사들인 것은 2012년 1월이다. 당시 비상장이던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지분 17.00%(42만5000주)를 사들인 데 이어 2015년 삼성물산의 지분 6743억원어치를 매입했다. 2015년 매입은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격을 받은 삼성물산의 경영권 방어를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당시에도 "KCC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백기사로 KCC가 등판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면서 보유 지분이 9.57%로 줄었다.

KCC가 보유한 삼성물산의 6월 말 가치는 매입가격(1조811억원)의 2배를 넘는다. 여기에 HD한국조선해양(옛 현대중공업) 지분도 치솟고 있다. KCC는 2000년에 HD한국조선해양 지분 3.91%를 1729억원에 매입한 바 있다. 조선주가 치솟으면서 올들어 보유한 HD한국조선해양 지분가치가 치솟고 있다.

이 회사의 주력인 페인트 사업도 부진을 극복하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KCC의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5013억원으로 전년 대비 60.4% 늘어날 전망이다. KCC 주가도 올해 초 20만원 선에서 지난 16일 30만2500원으로 치솟았다.

KCC는 삼성은 물론 '범현대가' 기업 등의 백기사로 적극 나섰다. 2001년 정주영 명예회장 별세 뒤 그룹이 쪼개지는 과정에서 현대가 지배력이 약화됐다. 현대가의 지배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KCC는 현대중공업,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산업개발 등의 지분을 사들였다.

2003년에는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 주식을 사들이면서 이들 회사를 범현대가에 재편입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가 먹혀들지 않으면서 보유한 지분을 세계 2위 엘리베이터 업체인 쉰들러홀딩스에 넘긴다. 쉰들러홀딩스는 이후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놓고 현정은 회장과 분쟁을 겪고 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