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화가] 미술 한류의 원조, 고암 이응노

입력 2024-08-15 17:48
수정 2024-08-16 07:49


고암 이응노(1904~1989)는 ‘미술 한류(韓流)’의 원조로 꼽히는 화가다. 식민지 조선에서 정통 문인화를, 일본 동경에서 서양화를 배운 그는 1958년 54세에 프랑스 파리에 진출해 현지 미술계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그가 잡지를 찢어 붙여 만든 콜라주 작품이 ‘동양적 추상미술의 정수’라는 찬사를 받으면서다.

이 화백이 세계 미술계의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한 가지 화풍에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꾀했다는 것이다. 파리 진출 이후 추상화를 그리던 그가 구상화인 ‘군상’ 연작을 그리기 시작한 건 말년인 1980년대다. 그는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거나 두 손을 높이 들고 춤을 추고 상모를 돌리는 등 환희의 춤을 추는 사람들을 통해 인류 전체의 평화와 화합에 대한 염원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 화백의 국내 인지도나 전시 빈도는 이 같은 국제적 위상에 한참 못 미친다. 사연 많은 그의 인생 탓이다. 이응노는 1967년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2년이 넘는 옥고를 치렀다. 아내 박인경 주도로 1977년 윤정희·백건우 부부가 납북될 뻔한 사건에 연루된 적도 있다. 정부가 그의 입국과 국내 전시 및 작품 거래를 한때 금지하기도 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이 화백 탄생 120주년 기념전 ‘고암, 인간을 보다’는 군상 연작을 비롯해 100여점에 이르는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전시는 9월 8일까지. 성수영 기자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