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투자자·이사 간 소송이 늘고 주주 사이 갈등이 깊어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5일 ‘이사 충실의무 확대 관련 상법 개정에 관한 연구’ 용역 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연구를 맡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보고서에서 “최근 제기된 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 주장은 법적 개념의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이런 내용으로 상법을 개정하면 소송 증가와 주주 간 갈등 심화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최근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바람을 타고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현행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 이사회가 결정한 인수합병(M&A), 기업분할 같은 경영상 중요 사안과 관련해 사후 소액주주를 비롯한 주주 이익을 고려했는지가 소송 등의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최 교수는 “이사의 충실의무란 이사가 회사에 충성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사와 회사 간 이해가 충돌할 때’ 회사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면 이는 ‘이사와 주주 간 이해가 충돌할 때’ 주주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며 “이사는 주총 결의를 집행하는 사람이기에 이사와 주주의 이해가 충돌한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주=1표’라는 주주 평등 원칙을 훼손한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최 교수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한 충실의무를 명시적으로 추가하자는 주장은 오히려 소액주주가 ‘반비례적 이익’을 얻는 것을 보장하려는 시도가 된다”고 했다. 보유한 주식에 비해 회사에 과도한 요구를 하는 행동주의 펀드 등의 행위를 법적으로 보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에서 찾기 힘든 과잉 규제로도 평가했다. 최 교수는 “미국 일본 프랑스 등 6개국 법률을 분석한 결과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법이 개정되면 소송 증가와 주주 간 갈등 증폭으로 기업 경영상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며 “시장에서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법률로 일반화하기보다 현행법과 판례를 통해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