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가 가시화되자 그동안 위축됐던 초대형 오피스 매매 시장이 빠르게 활기를 찾고 있다. 서울 주요 권역에 초대형 빌딩을 보유한 부동산 ‘큰손’들이 속속 매각 사전 작업에 들어가고 있다. 초대형 오피스 빌딩은 대개 가격이 수조원대에 달하다 보니 인수 후보들은 수천억~수조원의 막대한 자금을 차입해야 한다. 그만큼 금리 향방이 딜 성사 여부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된다. 연말까지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를 비롯해 중심업무지역(CBD) 핵심 랜드마크 자산인 미래에셋 센터원, 광화문 일대에서 초대형 빌딩으로 꼽히는 서울파이낸스센터(SFC) 등이 매물로 나올 전망이다. ○서울 랜드마크 빌딩들 ‘시장 태핑’
1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서울 내 주요 오피스 빌딩을 보유한 브룩필드자산운용, 싱가포르투자청(GIC) 등은 자산 매각에 앞서 수요조사(태핑)를 위해 부동산 매각 자문사들과 접촉하고 있다. 브룩필드는 2016년 여의도 IFC를 인수한 캐나다 대체투자 자산운용사다. GIC는 24년간 보유한 SFC를 매각하기 위해 시장 분위기를 파악 중이다.
브룩필드는 IFC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오피스타워 3개 동, IFC몰로 구성된 IFC는 거래 예상 가격이 4조원 이상에 달한다. 워낙 대형 빌딩인 데다 2022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한 차례 매각을 시도했다가 무산된 바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이번 매각마저 실패하면 더욱 장기 보유하는 형태로 가게 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IFC 관련 의사 결정은 브룩필드 본사가 직접 챙기고 있다.
을지로에 있는 랜드마크 자산 센터원도 부동산 IB들이 관심을 보이는 매물로 꼽힌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센터원 지분 일부를 매각하기 위해 물밑에서 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거래 주관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움직이는 모양새다.
GIC는 올해 초부터 광화문 SFC 매각 여부를 검토해왔다. 조만간 부동산 자문사들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돌릴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SFC는 GIC가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3500억원에 인수하며 한국 시장 진출을 알린 자산이다. 연면적은 11만9646㎡(약 3만6192평)로 지하 8층~지상 30층 규모다. 3.3㎡당 4000만원으로 계산하면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금리 인하에 조단위 매매도 ‘순항’초대형 부동산 자산이 잇따라 매물로 등장하는 것은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고 있어서다. 한국은행과 미국 중앙은행(Fed)이 나란히 연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금리는 부동산 거래 재개의 주요 가늠자로 꼽힌다. 부동산 자산 매입 금액의 60%까지 차지하는 대출의 조달 금리가 낮아지면 금융비용이 줄어든다. 비용 감소는 자연스럽게 매입 비용 대비 수익률 상승으로 이어져 수월하게 거래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더에셋(옛 삼성물산 서초 사옥), 돈의문 디타워 등 해당 지역 랜드마크 빌딩의 매각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는 점도 초대형 매물이 시장에 나오는 이유로 꼽힌다. 삼성SRA자산운용은 더에셋 매도인인 코람코자산신탁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다음달 매매계약 체결을 위해 협의하고 있다. 매매가격이 1조1000억원에 달한다. NH농협금융 자회사 농협리츠운용은 서울 서대문 사거리에 자리 잡은 돈의문 디타워를 약 9000억원을 써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부동산 투자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던 기관투자가도 점차 자금을 집행하려는 추세다. 국민연금공단은 부동산 대출, 코어(핵심) 권역 투자 펀드로 나눠 1조350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새로운 부동산투자 책임자인 안준상 실장을 선임한 뒤 처음 시행하는 출자 사업이다. 행정공제회도 코람코자산신탁이 조성하는 오피스 우선주 투자 리츠에 1500억원을 투자 약정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