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니 콩쿠르 5관왕 박재홍…"라흐마니노프 아름다움에 매료"

입력 2024-08-15 17:26
수정 2024-08-16 00:16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다 보면 잔인하리만큼 아름다운 순간이 많아요. 그 향에 취해버릴 때가 있죠.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고 페이스를 지키며 연주하려고 해요.”(피아니스트 박재홍)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무려 5관왕(2021년)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클래식 스타 반열에 오른 피아니스트 박재홍(25). 클래식 레이블 데카(DECCA)에서 발매한 그의 독집 앨범 ‘스크리아빈·라흐마니노프’가 공개됐다. 박재홍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예전부터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을 꼭 연주해보고 싶었다”며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해 미루다가 도저히 참지 못해 연주하게 됐고, 좋은 기회로 음반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의 아름다움에 매료됐어요. 이 곡은 서사가 두텁고 흐름이 길어요. 이 곡을 메인디시로 생각하고 같이 뭘 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스크리아빈의 프렐류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스크리아빈과 라흐마니노프는 각기 다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작곡가지만, 러시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같은 스승에게 배운 동급생이기도 하다. 이번 음반에는 두 동급생 작곡가의 작품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번, 스크리아빈 프렐류드 전곡을 수록했다. 박재홍은 “낯익은 곡은 아니지만 다른 유명한 곡에 견줄 만큼 명곡들”이라며 “작곡가들이 남긴 작품들이 골고루 사랑받도록 연주하는 게 (연주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큐레이팅 취지를 밝혔다.

“저는 이 작품으로 작곡가를 새로 보게 됐어요. 라흐마니노프는 아름다운 선율, ‘킬링 프레이즈’를 잘 쓰는 음악가로 생각했죠. 라흐마니노프 음악 특유의 확 올라오는 감정, 카타르시스를 즐겼어요. 그런데 소나타 1번을 보면 선율뿐 아니라 베토벤 소나타처럼 구조적이에요. 마치 말하는 것 같죠. 그의 다른 작품에도 몰랐을 뿐이지 그런 특징이 다 녹아있더라고요.”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1번은 3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각 악장이 파우스트, 그레첸, 메피스토펠레스 등 문학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식.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결국 파우스트와의 연관성을 없애고, 소나타로만 출판했다.

“캐릭터를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려고 해요. 오히려 절대음악처럼 해석하려고 합니다. 표제 음악의 위험성은 표제 외에 다른 걸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 같아요. 다양한 다른 가능성이 없어지는 건 큰 희생이 될 수 있잖아요. 라흐마니노프가 파우스트와 연계해 곡을 썼지만, 그냥 소나타로 출판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봐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국내파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187㎝의 장신과 12도를 가뿐히 짚는 큰 손으로도 유명하다. 건장한 체격에서 오는 풍성한 소리와 탁월한 표현력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아왔다. 그는 올가을부터 독일 베를린으로 건너가 바렌보임 사이드 아카데미에서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언드라시 시프 경의 가르침을 받는다. 박재홍은 이번 음반 발매를 비롯해 영국 위그모어홀,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등에서 활발한 연주를 하며 글로벌 연주자로 도약하고 있다.

박재홍은 음반 수록곡들과 스크리아빈의 ‘판타지’를 더한 프로그램으로 통영국제음악당(8월 25일), 서울 예술의전당(9월 1일), 울주문화회관(9월 6일), 대구 수성아트피아(9월 21일), 경남문화예술회관(9월 26일)에서 연주 투어를 이어간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