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90분간 이어진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8월 정기 연주회 무대는 다양성 그 자체였다. 조지 거슈윈과 모리스 라벨, 레너드 번스타인의 작품으로 꾸며진 이날 공연은 일단 보는 재미가 색달랐다. 거슈윈의 ‘파리의 아메리카인’에서는 기존 관현악기 외에 색소폰이 당당히 한 구역을 차지했고, 자동차 경적 같은 이색적인 도구도 음악을 만드는 데 가담했다. 이어진 라벨 피아노 협주곡은 우드스톡이 우리 국악의 박처럼 짧고 굵게 채찍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교향적 무곡’에서는 단원들이 악기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맘보!”라며 다 함께 소리를 지르고, 손가락을 튕기는 등 신체를 악기로 사용했다.
다양한 것은 악기 편성뿐이 아니었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20세기로 진입하며 클래식 음악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주는 한 편의 스냅 사진과 같았다. 대중음악과 순수음악을 갈라치기 하는 이분법이 얼마나 의미 없는 선입견인지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사회적 하층민이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인 재즈가 정통 클래식 음악의 예술적 재료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대중음악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거슈윈은 클래식 음악가로 인정받으며 라벨과 같은 바다 건너 유럽의 작곡가들에게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 작곡가 번스타인은 자신이 작곡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사용한 음악들로 한 편의 관현악곡을 완성했다. ‘교향적 무곡’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맘보’는 쿠바의 댄스 음악이며, 두 번째 곡 ‘차차’ 또한 룸바와 맘보에서 파생한 남미 서민들의 댄스 음악이다.
사실 클래식 음악이 서민층의 음악을 흡수한 사례는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바흐와 같은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이 모음곡의 형식으로 즐겨 사용한 사라반드라든가 지그, 쿠랑트 같은 곡들은 모두 유럽 농민들의 춤곡 스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문제는 클래식 음악으로 승화된 이런 재료들을 연주자들이 어떻게 연주하는가에 달려 있다. 클래식 음악가들이 이런 곡을 연주할 때면 여전히 정통 고전 형식에 압도돼 대중음악이 지닌 고유한 매력과 어법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한경아르떼필의 연주는 달랐다. ‘파리의 아메리카인’에서부터 이 젊은 악단은 역동적으로, 그리고 ‘클래식’이라는 편견 없이 음악을 마주했다. 찰지게 끈적이던 블루스 테마, 혼미한 스윙 리듬에 이르기까지 한껏 텍스처를 살렸고, 청중은 익숙한 소리에 흥겹게 반응했다.
라벨 협주곡을 협연한 피아니스트 신창용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에 심어진 재즈 코드들을 놓치지 않았으며, 느린 2악장에서는 프랑스 특유의 색채미를 살리는 섬세함이 엿보였다.
마지막 번스타인 곡에서 음악회의 흥은 절정에 이르렀다. ‘엘 시스테마’의 대표 레퍼토리인 ‘맘보’를 전곡 버전으로 들을 수 있었던 이 흔치 않은 무대에서 단원들은 자신의 젊음과 끼를 자유로이 발산했다. 자신감 넘치게, 하지만 정확하게 터져 나오는 금관들의 안정된 사운드도 말복의 찌는 무더위를 식혀줬다. 최고의 수훈장은 지휘자 최수열이었다. 그의 지휘봉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게 단원들의 마음을 전면 개방했고, 적절한 순간마다 스펙트럼을 화려하게 펼치는 기폭제가 됐다.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추는 듯한 그의 뒷모습은 청중이 공연을 한층 더 즐길 수 있게 안내하는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였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