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문닫고 기사 생존권 박탈"…모두가 반대하는 '택시 월급제'

입력 2024-08-14 17:56
수정 2024-08-22 16:11

“시간만 채워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면 어떤 기사가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안 그래도 쪼그라드는 법인택시 시장에서 월급제 도입은 그야말로 날벼락입니다.”(운수회사 임원 A씨)

“택시월급제는 공산주의와 다름없습니다. 일한 만큼 버는 현행 제도가 사라지면 열심히 운전할 이유가 없죠. 그러면 시민들이 밤에 택시 잡기 전쟁을 벌여야 할 겁니다.”(법인택시 기사 B씨)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법인택시 월급제를 골자로 하는 택시발전법 시행일(오는 20일)이 예정대로 의결되자 택시업계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택시 회사 줄도산과 ‘택시 대란’을 초래할 수 있는 법안이 개정 없이 시행되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방치했다는 지적이다.○민주노총 산하 노조도 반대택시월급제는 택시 업체와 기사 모두 반대하는 법안이다. 회사가 적자를 오롯이 떠안아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발주해 한국교통연구원이 작년 7월 발표한 ‘법인 택시 월급제 도입 성과 분석 및 확대 방안 마련’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월급제가 전국에서 시행되면 운송 수입금이 적정 운송원가보다 덜 걷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들도 소득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한다. 서울시가 2022년 9월 법인택시 기사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64.7%가 택시완전월급제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다양한 택시 기사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란 주장도 나온다. 특히 고령이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싶은 기사는 주 40시간 이상 근무가 어렵다는 것이다. 법인택시 임원 C씨는 “택시월급제는 근로 형태 유연화를 막아 법인택시업계 인력난을 가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간 택시월급제를 표방한 정책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2015년 한국택시협동조합이 운영한 사납금 없는 ‘쿱택시’는 재정난을 버티지 못해 파산했고, 2018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가 시행한 전액관리제 역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과 법인택시 단체인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물론 같은 민주노총 산하 노조인 전국민주택시노조도 지난 6월 “택시월급제는 실현 불가능한 제도”라는 입장을 냈다.○개정안 처리 전 고발전 펼쳐질 수도국토부 역시 법안의 맹점을 인식하고 국회에 개정안 처리를 여러 차례 촉구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은 공공운수노조 반대로 매번 무산됐다. 21대 국회 당시 국토교통위원회 야당 간사였던 최인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1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19일 만에 돌연 법안을 자진 철회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최 전 의원에게 법안 폐기를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귀띔했다.

국토부가 정치권 인사를 설득하면 공공운수노조가 막는 행태는 22대 국회 들어서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국회 관계자는 “애초 원안을 민주당에서 발의한 만큼 국토부는 야당 의원들에게 개정안 발의를 강하게 주장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며 “결국 국민의힘에서 김정재 의원이 어쩔 수 없이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말했다.

국토위는 오는 19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김 의원의 개정안 처리를 논의할 계획이지만 이날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작다. 택시업계는 개정안이 처리되기 전까지 암암리에 운영해 온 기존 사납금 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부 업체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별도 계약을 맺어 택시발전법을 우회하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법 위반 업체 고발 등 강경 대응을 예고한 점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그동안 서울에서 고발을 하지 않았던 건 시범 도입 지역이었기 때문”이라며 “법안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위반 업체 고발은 물론 위법과 편법으로 법을 회피하는 행태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발전법엔 위반 시 처벌 조항이 없지만 고용노동부에서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감독 청원이나 고소·고발이 있다면 절차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원/정희원 기자 top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