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지갑 털어가는 '하츄핑'…'개미지옥' 창시자는 누구? [인터뷰+]

입력 2024-08-15 11:00
"한국 애니메이션도 K-팝, 드라마처럼 글로벌 인기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츄핑'의 아버지 김수훈 총괄 감독 겸 SAMG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는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쇼박스 사옥에서 이같이 말했다.

여름 성수기 박스오피스에서 선전하고 있는 '사랑의 하츄핑'은 운명의 소울메이트를 찾아 나선 로미와 하츄핑의 첫 만남을 그린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다. 독보적인 키즈 팬덤을 보유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캐치! 티니핑'의 첫 영화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는 시청률 20% 돌파, 글로벌 누적 조회수 8억뷰 등 론칭 4년 만에 한국을 대표하는 IP 중 하나로 급부상했다.

특히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마법, 왕국, 요정 소재에 승부욕 강하고 활발한 소녀 주인공과 여기에 시리즈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귀여운 티니핑들이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티니핑을 '파산핑', '등골핑'이라고 부르고 있다. 캐릭터가 시리즈별로 계속 나와 아이들에게 완구를 사주다 보면 파산을 면하기 어렵다는 부모들의 우스갯소리에서 나온 말이다.

김 감독은 이런 별명에 대해 "부모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티니핑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만 한 번만 이해하면 빠져나 갈 수 없는 방식"이라며 "이름 뒤에 '핑'만 붙이면 응용할 수 있게 해서 공식만 알면 아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인기 요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티니핑 팬들은 물건을 사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캐릭터를 사는 것이 특징"이라며 "일반적인 완구를 살 때와는 다르다. 아이의 기호에 맞춰 사주다 보면 부모들도 사주는 맛이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 세계관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김 감독은 여러 K팝 아이돌을 보면서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한국은 예쁜 걸 좋아하고, 미국은 이를 선호하지 않는 문화적 차이가 있다. 차별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비주얼로 최대한 노력을 해 맞추어 갔다"고 설명했다.

영화 개봉 후 온라인상에선 "딸아이 보여주러 갔다가 눈물 훔치고 나왔다"는 실 관람객의 후기들이 잇따른다. 김 감독은 '사랑의 하츄핑'에 대해 "첫사랑 같은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아이들은 요정이라는 존재를 기본적으로 좋아해요. 로미 공주는 자신으로 생각하죠. 로미 공주가 하츄핑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떤 감정일까에 대한 걸로 시작했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 했어요. 엄마와 딸, 남녀 간, 동물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이 영화는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선택한 장치는 뮤지컬이었다. 일각에선 '사랑의 하츄핑'을 '한국판 겨울왕국'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특히 메인 테마곡인 '처음 본 순간'을 에스파의 윈터가 가창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쇼박스의 추천으로 윈터가 노래하게 됐다"며 "섭외 됐을 때 저도 좋아했다"고 밝혔다. 이어 "윈터 목소리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녹음할 때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만으로 감정 표현을 하기 너무 어려워요. 너무 세게 하면 간지럽고, 그 중간적인 지점을 표현하기 위해 뮤지컬을 선택했죠. 하지만 미국적인 게 아니라 한국적인 뮤지컬로 풀었어요. 심플한 스토리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판타지적인 지점을 노래로 완성했습니다."

극 중 자신만의 운명의 티니핑을 기다리는 이모션 왕국의 공주 로미는 우연히 하츄핑의 존재를 접한 후 자신의 소울메이트가 될 것을 직감한다. 이후 왕국을 떠나 하츄핑을 만나기 위해 생애 첫 용기를 내고 외로이 사는 하츄핑과 진심을 나눈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며 인간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트러핑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더욱 급물살을 탄다.

김 감독은 "트러핑은 사랑의 중요성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했던 캐릭터"라며 "로미가 하츄핑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 하려면 시련이 깊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스토리 자체가 무서워서 경계를 만드는 데 굉장히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리암 왕자 캐릭터도 남다른 잘생김 때문에 입소문을 탔다. 김 감독은 "왕자 캐릭터는 항상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 로맨스물에 가까운데 여기서 왕자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잘생긴 리암 왕자 캐릭터 모티브에 대해 질문하자 "여러 아이돌을 보면서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왕자의 모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성이 너무 강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좋아할 비주얼이 탄생한 것"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2년이란 시간 공 들여 내놓은 '사랑의 하츄핑'은 누적 관객 수 44만명을 기록하며 가족 관람객의 선택을 받고 있다. IP 특징이 있는 작품은 실사 영화와 손익분기점 추산 방식이 달라 정확하게 산정하기 힘들지만, 극장 목표 관객 수는 50만 명으로 광복절 연휴가 지나면 이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인기에 힘입어 '사랑의 하츄핑'은 국내를 넘어 중국 개봉을 준비 중이다. 김 감독은 "시리즈로는 중국을 제외하곤 아직까지 본격적인 진출을 안 했는데, 이번에 일본에서도 완구와 같이 브랜드 론칭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뮤지컬도 준비 중이다. 김 감독은 "내년 초 극장용 뮤지컬을 선보일 예정"이라며 "처음엔 큰 탈인형을 쓰고 하는 게 너무 싫었는데 진짜처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족용 뮤지컬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부모님이 티켓팅을 하고 들어왔는데 시시하면 안 될 것 같다. 영국에서 '겨울왕국' 뮤지컬도 보고 왔는데 재밌더라. 티켓을 끊으면 요즘은 어른 2명에 아이 1명인데, 어른 관객의 구미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발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김 감독은 하츄핑을 비롯한 티니핑 캐릭터들이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우리는 몰랐지만 한국이 K팝, 드라마처럼 애니메이션도 잘 만들어요. 시청자들 수준이 높아진 것처럼 제작 수준도 높아졌죠. '프리스쿨' 세대에선 뽀로로, 티니핑, 카봇처럼 한국에선 국산 캐릭터들이 유일하게 잘 됩니다. 미국식 캐릭터는 아시아에 안 먹혀요. 하지만 한국식 3D 캐릭터는 글로벌에서도 된다고 봐요. 예전엔 디즈니의 거대한 벽을 뚫을 수 없었지만, 요즘은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틈이 생겼고, 우리가 곧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꿈만 꾸던 것들을 해 볼 수 있게 됐어요."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