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인중개사 욕하나…전세 사기는 부동산 정책 때문" [이송렬의 우주인]

입력 2024-08-15 20:58
수정 2024-08-15 20:59

"전세 사기 사건이 사회적인 이슈로 급부상한 후 검거된 2400여 명 중 대다수는 '무면허'로 중개를 한 사람입니다. 공인중개사 혹은 중개 보조인은 400명가량에 불과합니다."

이종혁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회장(57·사진)은 최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2000여 명의 법을 어긴 사람들 때문에 11만명이 넘는 선량한 공인중개사들이 비판받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프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11만명의 개업 공인중개사가 속한 전문자격사 단체다.

집값이 무섭게 폭등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부터다. 반대로 얘기하면 2019년부터 전세 사기는 예견됐다고 할 수 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무섭게 치솟던 집값 상승세는 점점 다른 주택 유형으로 번져나갔다. 아파트가 오르니 대체재였던 오피스텔이 뛰었고, 오피스텔이 뛰니 빌라 등에도 상승세가 옮겨붙었다.

집값이 오르면서 덩달아 전셋값도 같이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비아파트에서는 치솟은 전셋값이 매매가격을 넘어서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수천만원만 있으면 투자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오히려 돈을 남기면서 빌라를 살 수 있는 상황으로 변한 것이다. 빌라는 이런 투기꾼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됐고, 이들은 세입자들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으로 일대 빌라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이종혁 회장은 "갭투자, 역전세로 인한 전세 보증금 회수 불능사태, 과도한 전세 대출 등 전세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은 부동산 정책 실패로 발생했다"며 "하지만 전세 사기 사건이 수면 위로 떠 오른 후 정작 물어뜯기고 있는 것은 공인중개사들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전세 사기로 중개사들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후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개인들이 아주 많다"며 "전세 사기 진원지로 꼽힌 일부 지역의 중개사들은 중개를 꺼리는 것은 물론 문을 닫고 휴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말했다.

전세 사기와 같은 일탈 행위를 감시하고 업계의 자정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선 공인중개사협회에 최소한의 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1999년 임의단체로 전환된 협회의 '법정 단체화'가 대안이라는 얘기다.

이 회장은 "전세 사기 문제가 터진 이후부터 사기 피해가 큰 지역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피해자들과 현장에 있는 공인중개사들을 만나본 결과 이미 현장에서는 전세 사기의 징후가 농후했다"며 "하지만 공인중개사협회가 이들을 단속하는 등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해당 지역 지자체에 신고하는 게 최선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현재 협회는 불법 중개 세력을 찾아낼 수 있는 전국 19개 시도회와 256개 지회에 바로 가동할 수 있는 지도단속위원회가 조직돼 있다"며 "협회가 법정 단체가 된다면 감시 기능을 활성화해 전세 사기 예방에 실질적인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회가 수년째 추진하고 있는 핵심 과제 중 하나인 법정단체화가 현실화하면 개업 공인중개사의 협회 가입이 의무화된다.

일각에서는 협회의 법정 단체 인정해주는 것이 너무 막강한 권한을 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이뤄진 협회에 힘을 주게 되면 이제 성장하기 시작한 부동산 중개 온라인 플랫폼 등 프롭테크(정보 기술을 결합한 부동산 서비스 산업)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는 게 반대 측의 입장이다.

이 회장은 "한때 공인중개사협회와 프롭테크 업체 간의 갈등이 있기는 했지만, 현재는 큰 갈등 없이 상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공인중개사협회가 가진 권한에 견제가 필요하다면 감정평가사협회처럼 징계위원회를 외부 사람들로 구성해 권한 남용을 막는 방식을 사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전세 사기가 터진 또 다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공인중개사들과 세입자가 집주인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게 공인중개사협회의 설명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부동산통합지수시스템(KARIS)이다. 이 시스템은 전국에 있는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이 사용하는 계약서 프로그램 '한방'의 데이터를 통계로 데이터베이스화 한 것이다.

이종혁 회장은 "결국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와 맞닿아있다"며 "한국부동산원과 KB부동산과 같이 다른 통계기관에서 발표하는 자료는 공인중개사들이 계약 후 신고하는 실거래가 신고 내용 등의 정보를 기반으로 나오기 때문에 시장을 후행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계약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반영돼 기존의 정보들보다 빠르고 아파트뿐만 아니라 다가구, 다세대, 연립, 단독 등 주택은 물론 상가나 빌딩, 통지, 공장 등 5300만건에 달하는 방대한 계약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며 "협회만 제공할 수 있는 고유정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매수자·매도자 연령별 비중 등 특성화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양성'을 갖고 있다"고 짚었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사기 예방을 위한 협회의 법정 단체화와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공인중개사들 개개인이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공인중개사들도 각성하고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며 "높아진 눈높이를 맞춰가면 안 된다. 한발 더 빠른 사고를 해야 현장에서 실수요자들이 공인중개사들을 믿고 따라오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이 회장은 전북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고 목원대학교에서 대학원 부동산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학교 정책경영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부동산경매학회와 한국부동산경영학회, 한국부동산경제단체연합회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고, 2022년부터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주인. 집우(宇), 집주(宙), 사람인(人). 우리나라에서 집이 갖는 상징성은 남다릅니다. 생활과 휴식의 공간이 돼야 하는 집은, 어느 순간 재테크와 맞물려 손에 쥐지 못하면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끼게 만드는 것이 됐습니다. '이송렬의 우주인'을 통해 부동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사람을 통해 들어봅니다. [편집자주]
글=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사진·영상=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