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산하 전국연합노동조합연맹(연합노련)에서 '위원장 부정선거 의혹'이 노조원 사이에서 제기됐다. 조합원들은 새 노조를 차리고 나간 전임 위원장이 선거에 개입했다고 주장하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노조 규약을 충실히 이행했다"며 맞서고 있다. 조직원 감소로 인한 우려가 내부 갈등을 낳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합노련은 여타 산업별 연합단체에 소속되기 어려운 업종이나 직종을 포괄하는 한국노총 산하 노동조합 연맹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노조 회계 공시 기준 3만5000명의 노조원을 보유한 조직이다. ○ 새 노조 만들고 나간 前 위원장... "선거 개입" 비판13일 노동계에 따르면 연합노련 '정의로운 조합원'은 전날부터 "연합노련 26대 위원장 선거 과정과 결과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최상근 신임 노조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정의로운 조합원은 연합노련 지역별 의장 등이 모인 임시 조직이다.
이승조 연합노련 전 위원장은 연맹을 탈퇴하고 지난달 초 '한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의 초대 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건설 산별 노조인 한국건산노련은 2만2000명 규모로, 기존 연합노련 소속 건설 관련 4개 노조가 합류한 조직이다. 연합노련은 이후 대표자 투표에 돌입했고, 최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보궐선거에서 재적 대의원 86명 중 44표(51.2%)를 얻어 당선됐다. 경쟁자인 황병근 후보와는 2표 차이였다.
노조원들은 이번 선거에 참여한 일부 대의원들이 한국건산노련에 소속된 점을 강하게 문제 삼고 있다. 정의로운 조합원 측은 "이 전 위원장은 연합노련에서 탈퇴한 상태임에도 자신의 건산노련 대의원 37명을 연합노련에 남겨둬 투표권을 행사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이 전 위원장이 두 연맹을 동시에 자기 영향력 아래 두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선관위는 전날 입장문을 내고 "선거의 모든 절차는 노련 규약과 규정을 준수했다"며 "선관위의 자의적·유추 해석을 배제하고 변호사·노무사 등 의견을 충실히 반영해 적법하게 진행했다"고 전했다. 선거에 참여한 대의원들 역시 올 1월 정식으로 연합노련 대의원 자격을 얻은 만큼 투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원 측은 "최 위원장은 연합노련에 가입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며 출마 자격도 함께 지적한다. 연합노련 규약에 따르면 가맹 노동조합에서 조합원 경력이 1년 미만인 경우 임원직에 오를 수 없다. 최 위원장은 과거 연합노련 소속인 칠곡군청노조에 있다 작년 11월경 HC환경노조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 측은 이에 대해서도 "규약은 가맹 노조가 연합노련 소속이 된 후 '계속해서 1년 미만인 경우'로 규정하지 않는다"며 "최 위원장의 군청노조 조합원 자격을 임의로 배제해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법률가 의견을 존중했다"고 밝혔다. ○ 조직원 감소로 인한 '영향력 약화' 분석도이번 갈등은 노조원 감소에 대한 연합노련의 내부 불만이 폭발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노조원 수는 노조의 영향력에 직결되는 요소기 때문이다. 이 전 위원장이 주요 건설노조를 대거 건산노련으로 이동시키면서 3만5000명에 달했던 연합노련 노조원은 1만8000명까지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금속·화학 등 여타 노조처럼 뚜렷한 직종으로 모인 조직이 아닌 만큼 조합원 모집도 쉽지 않다.
한편 신임 위원장이 이끄는 연합노련은 연맹에 남은 나머지 건설노조와도 분리를 추진 중이다. 최 위원장은 선거 당시에도 건설노조 잔류를 주장한 황 후보와 달리 중·소규모 사업장 노조의 결집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연합노련은 최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내고 "건설 조직의 난립과 대립으로 조직 간 분쟁이 극단으로 치달았다"며 "분쟁이 없도록 건설 조직의 한국건산노련 완전 이적을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서도 "일부 세력이 부정선거가 있던 것처럼 호도하지만 불복 절차를 진행하면 될 일"이라며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는 세력이 개입되어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도 했다.
나머지 건설노조가 연합노련을 빠져나갈 경우 조합원 수는 1만7000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노련 관계자는 "노조의 동의를 먼저 받아야 하고 동의가 없는 경우 강제로 이적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용역 업체·환경 등 열악하고 소외된 조직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