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戰 핵재앙 우려…'러시아 점령' 원전 불길

입력 2024-08-12 17:33
수정 2024-08-1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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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급습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새 국면을 맞은 가운데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 단지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에 화재가 발생했다. 방사능 유출, 대규모 폭발 우려를 키운 이번 화재를 두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포격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방화를 원인으로 지목하며 공방을 이어갔다. “핵 테러” vs “자작극” 11일(현지시간) AFP통신, 로이터통신 등은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의 냉각탑에 화재가 발생해 구조대가 진압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화재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화재를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 로사톰은 성명을 통해 “11일 오후 8시20분과 8시32분께 자포리자 원전 냉각탑 2개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받아 내부 화재가 발생했다”며 “오후 11시 30분께 큰불이 잡혔지만 냉각탑 내부 구조가 심각하게 손상됐다”고 말했다. 이 공격을 두고 우크라이나 ‘핵 테러’라고 비판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본토를 공격당해 궁지에 몰리자 자포리자 원전에 불을 지르는 자작극을 펼친 것이라고 응수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이 시설에 불을 질렀다”며 “필요시 자포리자 원전을 파괴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핵 재난을 안겨줄 수 있음을 암시함으로써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자포리자 원전 인근 도시 에네르호다르의 우크라이나 당국자는 “러시아군이 냉각탑 안에서 오토바이용 타이어를 태워 화재를 꾸며냈다”고 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모두 화재로 인한 방사능 유출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IAEA는 이날 X(옛 트위터)에 “냉각탑 화재 관련 정보를 보고받았지만 핵 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핵 재앙으로 확대 우려1995년 건설된 자포리자 원전은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원자로 15개 중 6개가 모여 있는 유럽 최대 규모의 원전 단지다. 우크라이나 전체 전력 공급의 25%를 담당하던 시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여 만인 2022년 3월 초 러시아군은 이 지역을 점령했고, 그해 9월 원자로 6기 모두가 ‘냉온 정지’ 상태로 전환되면서 가동이 중단됐다.

우크라이나가 지난 6일부터 러시아 본토로 진격하는 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격화하면서 원전 주변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자포리자 원전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면 방사성물질이 대량 유출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원자로 냉각을 위해서는 전기가 계속 공급돼야 하는데, 전력이 끊기면 원자로가 과열돼 방사성물질이 대량 유출될 수 있어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역시 전력 공급 중단으로 연료 저장소에서 방출된 수소가 폭발의 원인이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이날 별도 성명에서 “이 무모한 공격은 발전소의 원자력 안전을 위협하고 핵 사고의 위험을 높인다”며 “지금 당장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본토로 진격한 지 1주일 만인 12일 우크라이나 군은 쿠르스크주를 넘어 인근 벨고로드주로 전선을 넓혔다. 벨고로드주는 지역 주민 1만1000명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 외곽에서 상황회의를 열고 “우크라이나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국경과 접한 러시아 본토에서 도발하고 있다”며 “민간인과 민간 인프라를 공격하거나 원자력발전소 시설을 위협하는 사람들과 무슨 협상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