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관치 금리의 역습, 뒤틀린 시장

입력 2024-08-11 17:42
수정 2024-08-12 00:43
‘관치(官治) 금리’의 역습. 지난달 이맘때 본지가 세 번에 걸쳐 보도한 시리즈 제목이다. 말 그대로 정부의 인위적 금리 개입을 꼬집은 기획기사였다. 관치 금리 문제와 그로 인해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로부터 딱 한 달이 지났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관치 금리는 더 굳어졌고, 시장은 점점 뒤틀려 갔다.

가장 큰 문제는 가계 빚 폭증이다. 얘기는 작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돈 잔치’ 언급 이후다. 당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시중은행을 일일이 돌며 가계대출 금리를 내리도록 압박했다. 금융당국은 위축된 부동산 시장을 지탱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억지로 끌어내리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길 잃은 정책에 가계 빚 폭증결과는 뻔했다. 가계대출 잔액은 매달 사상 최대를 경신하며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이 와중에 정부 정책마저 손발이 맞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가계대출 억제에 나섰고, 국토교통부는 서민용 저리 주담대를 쏟아내는 엇박자가 반복됐다.

길을 잃은 정부의 가계 빚 정책은 ‘더 센’ 헛발질로 이어졌다.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지난달 도입하기로 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 시행 시기를 돌연 한 달 미룬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 발표는 홈쇼핑의 ‘마감 임박’ 문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잠재적 부동산 매수자까지 은행으로 대거 끌어들이며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서 투자)를 부추겼다.

다급해진 정부는 지난달부터 은행에 가계 빚 관리를 주문했다. 시중은행의 대출 가산금리 인상을 사실상 용인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시중은행은 지난달부터 서너 차례에 걸쳐 주담대 최저금리를 연 3% 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번번이 대출 금리는 잠시 올랐다가 떨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주담대의 조달 원가에 해당하는 은행채 금리가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로 인해 더 빠른 속도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올려도 안 오르고 그대로인 금리. 한 달 넘게 이 같은 일이 이어지고 있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시장금리 통제 유혹 벗어나야문제는 코미디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스란히 서민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예금 금리는 계속 내리막세인데, 돈을 빌려야 하는 사람들은 엉뚱하게도 시장금리보다 높은 이자를 은행에 내야 하는 꼴이 됐다. 정부 눈치만 보는 은행들은 멋쩍은 표정만 짓고 있다. 관치 금리로 인해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만 커지면서다. 자신들 배만 불린다는 비판이 나올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물론 부동산 시장 안정을 꾀하는 동시에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 나서야 하는 정부의 고충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교차로에 선 자동차가 좌회전(경기 회복·부동산시장 안정)과 우회전(가계 빚 관리)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당국이 금리와 대출 수요를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오만한 착각’에 불과하다. 정부의 가격 통제가 늘 실패하듯, 금리 관리도 마찬가지다. 금융시장을 왜곡하고 은행의 혁신을 짓누를 뿐이다. 선의(善意)를 갖고 있더라도 그렇다. 관치 금리와 결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