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는 2021년 볼트 불량 문제로 차량 6000대를 리콜했다. 손가락 하나 크기의 볼트. 고작 그것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볼트 하나하나가 맡는 역할이 막중하다.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볼트는 2000개가 넘는다. 자동차 조립 시간의 90%가 볼트를 조이는 데 쓰이고, 품질 문제의 94%가 이 부품으로 인해 생긴다.
충북 진천에 있는 자동차용 볼트 제조 중견기업 선일다이파스는 매일 평균 80개 고객사에 보내는 볼트 500여 종을 생산한다. 브랜드, 차종마다 들어가는 볼트 모양이 미세하게 달라 ‘다품종 소량생산’에 특화돼 있다. 이런 생산 방식이 가능한 건 디지털 전환(DX)에 선도적으로 나선 덕분이다. 김지훈 선일다이파스 부회장은 지난 9일 “제조업 경쟁력은 점차 떨어지고 지방은 갈수록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며 “스마트팩토리를 구현해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을 도모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거운 철통은 로봇에 맡겨선일다이파스 공장 작업자들은 출근하면 생산라인 근처에 설치된 생산시점관리시스템(POP) 화면을 들여다본다. POP는 공장 생산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비다. 화면에는 작업자가 그날 해야 할 업무 목록이 뜬다. 작업자가 번호를 선택하면 정보가 창고와 운반 로봇에 전송된다.
운반 로봇인 레이저센서운반차(LGV)는 창고로 이동해 명령에 따라 볼트가 가득 담긴 철통을 받은 뒤 작업자에게 향한다. 2019년까지만 해도 작업자가 창고에서 물품을 한참 찾은 뒤 끙끙대면서 들고 다녔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선일다이파스 공장 안을 LGV뿐만 아니라 무인운반차(AGV), 레일운반차(RGV) 등 로봇 15대가 쉴 새 없이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작업은 현장 근로자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운반 로봇 외에도 협동 로봇, 3차원(3D) 로봇이 일부 라인에서 사람을 대체하거나 함께 일하고 있다. 사무 분야에서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로보틱스프로세스자동화(RPA)로 전환했다. 9대의 RPA가 24시간 업무를 수행해 매년 평균 60건 이상의 업무를 자동화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DX는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라며 “사람이 안 해도 될 일은 로봇이 하고, 인간은 좀 더 인간다운 일을 하게 하는 것이 DX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예측 생산으로 악성 재고 사라져볼트는 완제품 형태로 미리 만들어놓을 수 없다. 수요가 매달 들쑥날쑥하고, 종류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고객사 주문이 오면 최대한 빨리 만들어 공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반제품 형태의 재공을 만들어 창고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고객의 긴급 수요에 대응한다. 김 부회장은 “과거에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려고 하면 과잉생산이 불가피해 악성 재고가 쌓였다”며 “이제는 자동형 창고에 재공과 재고가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 손실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속도가 붙자 생산량은 늘고 불량품은 줄어드는 효과를 봤다. 큰 바퀴를 고정할 때 쓰는 허브 볼트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기존 14일에서 10일로 단축됐다. 불량률은 DX 이전보다 46% 줄었고, 재공·재고는 6.2% 감소했다.
현대자동차·기아 중심이던 수요처를 다변화하는 데도 DX가 기여했다. 김 부회장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공장을 보고 간 뒤 디지털로 공정을 제어하는 것을 보고 신뢰를 보냈다”며 “수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선일다이파스는 현대차뿐만 아니라 제너럴모터스와 포드, 폭스바겐, 혼다, 닛산 등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다. 과감한 인재 영입이 ‘승부수’
김 부회장은 2005년부터 DX를 추진했지만 선일다이파스와 소프트웨어 업체 모두 정보기술(IT) 경험이 부족한 탓에 쓴맛을 봤다. 10여 년 고민하던 중 2019년 삼성전자 출신으로 스마트팩토리와 경영혁신 분야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이용주 부사장을 영입하면서 DX에 탄력이 붙었다. 김 부회장은 “전체 시스템을 설계하는 역량은 중소·중견기업 규모에서 갖추기 쉽지 않다”며 “DX를 위해선 과감한 인재 영입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DX는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2020년엔 매출이 1445억원, 영업이익이 52억원이었는데 지난해 매출 2092억원, 영업이익 147억원을 거뒀다. 3년 새 매출은 44.7%, 영업이익은 2.8배 늘었다. 지방 기업은 갈수록 인력난을 겪고 있는데 선일다이파스는 DX 이후 20%가량의 인력 감축 효과를 봤다.
1976년 선경그룹(현 SK) 계열의 선경기계로 출발한 선일다이파스는 1983년 김 부회장의 부친인 김영조 회장이 인수해 현재까지 경영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선경에서 독립한 계열사 중 살아남은 유일한 회사다. 이 회사 초기만 해도 국내에서 자동차용 볼트 자력 생산은 불가능했다. 선일다이파스는 자동차용 볼트를 만드는 금형제조 기술, 생산기술, 설비 등의 국산화에 성공하며 국내 자동차산업과 함께 성장했다. 선일다이파스는 DX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고 자체 비용 2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김 부회장은 “우리의 DX는 아직 진행 중”이라며 “로봇과 사람이 같이 가는 시대가 온 만큼 제조업에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더 연구해보겠다”고 말했다.
진천=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