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지만, 나만 알기에는 아까운 가수.’
1998년생 싱어송라이터 허회경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인디 장르에서 활약 중인 허회경의 음악을 들으면 ‘내 일기를 노래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현실적이다. 2021년 싱글 ‘아무것도 상관없어’로 데뷔한 뒤 10여 개의 싱글 및 정규 음반을 낸 허회경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읊조리듯 노래한다. 특별한 마케팅이나 홍보 없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유명해졌다. 인기곡은 조회수 1600만 회를 넘어설 만큼 노래 자체로 사랑받으며 ‘아티스트의 아티스트’로 불린다. 가수들이 공개 추천하는가 하면 배우 박보검은 자신의 팬미팅 콘서트에서 허회경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불렀다. 소설가 김연수는 <음악소설집> 인터뷰에서 허회경의 ‘집으로 가는 길’을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달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콘서트를 마친 허회경을 서울 동교동에서 만났다.
“어릴 때 클래식 피아노를 치다가 취미로 작곡을 배웠어요. 고등학교 때 작곡으로 전공을 정하고 서경대 실용음악과에 갔습니다. 그때 쓴 곡을 녹음해서 음원 공유 사이트인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는데, 웹드라마 제작사에서 사용 문의가 왔어요. 좋다고 했죠. 사운드클라우드에 있는 음원은 저작권이 없거든요. 그래서 곧바로 유통사를 찾아가 음원을 냈어요. 그 음악이 ‘아무것도 상관없어’였고, 얼떨결에 데뷔하게 됐습니다.”
여러 아티스트가 허회경의 노래를 추천하는 배경엔 ‘가사’가 큰 축이다. 그의 곡 중 ‘김철수 씨 이야기’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특별하다고 한 너는 사실 똑같더라고/ 특별함이 하나둘 모이면/ 평범함이 되고/ 우두커니 서서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비극은 언제나 발 뻗고 잘 때쯤 찾아온단다.’ 또 다른 곡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서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가시 같은 말을 내뱉고/ 날씨 같은 인생을 탓하고/ 또 사랑 같은 말을/ 다시 내뱉는 것.’
두 노래 모두 보편적인, 누구나 느낄 만한 삶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한다. 가사를 보면 시니컬할 정도로 성숙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시처럼 서정적인 가사를 담아내는 배경엔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곡을 써가며 갈피를 잡을 때도 있고 특정 단어나 문장에 꽂힐 때도 있지만 주로 대화할 때나 신문 기사, 영화 대사, 책의 문장을 적어놓습니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자극적인 비트, 리듬, 가사가 많은 요즘 허회경의 곡에는 잔잔한 멜로디와 공백이 많다. 정적이고 철학적인 삶을 추구할 것 같지만 사실 낙천적인 성격에 여느 20대 친구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평소 강아지 수준으로 산책을 많이 합니다. 하루에 한 번,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산책하면서 머릿속을 환기하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음악을 통해 제 생각을 표현하고, 그걸 사람들이 알아주고 공감할 때 희열을 느낍니다.”
그는 ‘음악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감정적 동요뿐 아니라 이성적 성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음악가.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릴 때 이유 없는 감정만이 아니라 ‘아, 나도 예전에 그랬었는데’ 하는 생각을 같이 하게 하는 그런 싱어송라이터를 꿈꾼다고 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