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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권 시장-중
지난달 말 테슬라의 2분기 실적이 공개되자 시장은 출렁였다. '본업'인 전기자동차에서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 급감한 198억7800만달러(약 27조5608억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반면 '부업'이라 할 수 있는 탄소 배출권 판매로 벌어들인 수익은 같은 기간 3배 이상(216%) 급증해 8억9000만달러에 달했다.
테슬라는 2017년 처음 탄소 배출권 거래에 나선 이후 역대급 판매고를 올렸다. 테슬라 사례만 놓고 보면 탄소 시장은 성공리에 운영 중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테슬라가 참여 중인 탄소 배출권 거래 시장은 규제적 시장(Compliance Carbon Market)이다. 정부, 국제 기구 등이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들의 참여를 규제하는 곳이다.
주로 캡앤트레이드(Cap and Trade) 방식을 따른다. 정부 등은 기업별 배출량의 상한선을 설정하고 그 상한선 내에서 배출권을 발행(할당)한다. 기업들은 여유 배출권을 시장에 내다팔거나 필요 배출권을 산다. 테슬라는 캘리포니아주의 저배출차량 프로그램 등을 통해 남긴 배출권을 다른 회사들에 판매하며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발적 탄소 시장(Voluntary Carbon Market)과 다르다. 이 시장에선 기업들이 법적 의무가 없어도 탄소 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 탄소 크레딧을 구매한다. 베라(Verra), 골드 스탠다드 등 민간 인증기관들의 심사를 거친 산림화, 재생에너지 개발 등의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크레딧을 구매하면 간접적인 탄소 절감 노력을 인정받는 시스템이다.
이 자발적 시장은 끊임없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른바 그린워싱(위장 친환경주의)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델타항공, KLM 등 기업들은 탄소 크레딧을 기반으로 허위로 친환경 성과를 주장했다며 피소됐다. 베라는 자사가 발행한 탄소 크레딧의 품질, 신뢰성 등에 대한 비판이 계속 제기되자 지난해 6월 최고경영자(CEO)가 사퇴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 속에 MSCI가 추적하는 자발적 시장의 탄소 크레딧 가격은 2022년에 최고점을 찍은 뒤 계속 떨어지고 있다.
구글이 최근 환경보고서에 "값싼 탄소 크레딧을 대량 구매하던 관행을 중단하고, 탄소 크레딧 상쇄를 통해 구글의 운영이 탄소 중립적이라는 주장도 그만두겠다"고 밝힌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탄소 크레딧 손절 선언'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소직접포집(DAC)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서 탄소 제거 크레딧을 확보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구글이 SAF(지속가능 항공연료) 크레딧에 투자했다고 밝힌 것도 모두 전통적인 탄소 크레딧과 '거리두기'를 한 것일 뿐 구조적으로는 다를 바 없다.
다만 최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등 미국 고위 관료들이 탄소 크레딧을 공식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게 업계 호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 행정부는 지난 5월 스코프3(공급망 전체) 배출량의 경우 탄소 크레딧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블룸버그NEF는 이 같은 호재를 토대로 2030년이면 자발적 탄소 시장이 1조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각에선 자발적 탄소 시장의 상쇄 크레딧을 규제적 시장과 통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탄소 크레딧이 친환경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기업들의 자발적 수요에만 의존하고 있지만, 배출권을 구매하거나 탄소세를 지불해야 하는 규제적 시장에서 크레딧을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해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미 콜롬비아, 호주 등은 자국에서 생산된 크레딧을 규제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은 해외 크레딧을 활용해 기업들의 탄소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나라들이다.
한 월가 전문가는 탄소 크레딧 시장을 2008년 세계 경제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불신에 시달렸던 파생상품 시장의 역사에 비유했다. 그는 "업계 표준을 확립한 덕분에 파생상품은 수조 달러 규모의 거래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며 "탄소 상쇄 크레딧 시장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