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저축은행, 부실채권 '꼼수 매각' 논란

입력 2024-08-07 17:57
수정 2024-08-08 09:06

국내 79개 저축은행이 올해 상반기 3000억원대 적자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업계 안팎에서 상반기 적자가 5000억원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했는데, 부실채권 매각 과정에서 대규모 충당금이 환입된 결과다. 금융당국은 일부 저축은행이 실적을 좋게 포장하기 위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펀드에 부실채권을 비싸게 넘긴 것으로 보고 진상 조사에 나섰다.

7일 금융당국과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국내 79개 저축은행은 올 상반기 35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 저축은행 순손실 규모(962억원)와 비교하면 올해 적자폭은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적자 규모가 크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예상보다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에선 올 2분기부터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기준 개선 방안’이 적용돼 저축은행의 충당금이 크게 늘고 적자 규모도 불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저축은행이 부실채권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충당금이 환입돼 적자폭이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저축은행은 올 상반기 1조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정리했다.부실채권 비싸게 팔아 저축은행들 '실적 포장'
PF사업장 경·공매 넘기는 대신 스스로 만든 펀드에 대거 넘겨금융당국은 저축은행업계가 부실채권 ‘꼼수’ 매각을 통해 충당금을 대거 환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저축은행은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대해 20~30% 충당금을 쌓고 있는데, 업계가 자체적으로 만든 PF 정상화 펀드 등에 10~20% 할인된 가격에 부실채권을 팔았다는 것이다. PF 사업장을 경·공매에 넘기면 헐값에 처분해야 하지만 펀드에 매각하면 상대적으로 가격을 높게 책정받을 수 있다. 추후 부동산시장이 회복되면 펀드가 담고 있는 부실채권을 매각해 수익도 낼 수 있다.

앞서 저축은행중앙회는 PF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해 5100억원 규모의 2차 PF 정상화 펀드를 조성했다. 일부 저축은행은 이와 별개로 펀드를 추가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부실채권을 펀드에 매각해 환입한 충당금 규모가 최소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PF 펀드에 출자한 저축은행과 부실채권을 매각한 저축은행이 80% 이상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일종의 ‘자전거래’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부실채권 매각 시 부동산 감정평가 및 회계법인 가치평가 등을 받았다”며 “외부 검증을 거쳐 가격을 결정했기 때문에 꼼수 매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올 들어 금융감독원이 PF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면서 저축은행업계와 마찰음이 커지고 있다. 금감원이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면 저축은행은 이를 우회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4월부터 6개월 이상 연체된 PF 사업장에 대해 3개월마다 경·공매를 하도록 저축은행에 지시했다.

이에 저축은행업계는 최저 입찰가를 대출원금 수준으로 높게 책정해 경·공매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그러자 금감원은 지난달 규제를 더 강화해 대출 원리금이 3개월 이상 연체되면 1개월마다 경·공매를 통해 처분하도록 했다. 유찰 후 재공매 때는 직전 가격보다 10% 이하로 가격을 깎도록 했다.

금감원은 “2금융권 건전성 개선과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선 신속한 부실 정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저축은행업계는 “과도한 경영 개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공매 물량이 쏟아지면 가격은 더 급락하고 건설사와 부실채권 투자자만 혜택을 누릴 것”이라고 토로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