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언, NXP, ST마이크로 등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기업이 인력 감축, 생산 목표 축소 등 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전기차의 일시적 수요 정체에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 고조, 미국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게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올 연말까지는 고객사인 완성차와 자동차 전장(전자장치) 기업의 구매가 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차량용 반도체 세계 1위 기업 인피니언은 5일(현지시간) 실적 설명회(콘퍼런스콜)에서 구조조정 계획을 공개했다. 전체 직원(5만8600명)의 약 2.5%인 1400명을 줄이고, 선진국 법인 직원 1400명을 저임금 국가로 전환 배치하는 방안 등을 포함했다. 한국에 있는 후(後)공정 공장을 대만의 패키징 업체 ASE에 매각하는 것도 확정했다. 이를 통해 인피니언은 2027년까지 11억유로(약 1조3500억원)의 비용을 아낄 계획이다.
세계 2~3위권 차량용 반도체 업체도 올해 실적 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등 긴축에 들어갔다. 세계 2위 업체인 NXP는 최근 3분기 매출 목표치로 31억5000만~33억5000만달러를 제시했다. 시장 전망치 평균(컨센서스)인 33억6000만달러에 못 미치는 수치다. 세계 3위 ST마이크로도 올해 연간 매출 목표를 기존 140억~150억달러에서 132억~137억달러로 낮춰 잡았다. 두 회사가 매출 목표를 하향 조정한 만큼 차량용 칩 생산량도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요헨 하네벡 인피니언 최고경영자(CEO)는 “차가 안 팔려 고객사의 재고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황 부진은 올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커트 시버스 NXP CEO는 “완성차 기업들이 금리 인하를 기다리며 칩 주문을 줄이고 있다”며 “칩을 안 사고 재고부터 줄이는 ‘재고 조정’이 올 하반기 내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장기적으론 자율주행차 확대, 전기차로의 전환이 속도를 내며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란 낙관론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2023년 760억달러에서 2029년 143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대만 TSMC가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오는 20일 독일에서 신공장을 착공하는 것도 유럽의 차량용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분석된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용 고전력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시장을 확대할 요인으로 꼽힌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