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대만 등 아시아 증시 폭락에 이어 미국 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급락한 가운데 이번 주가 급락 사태가 1987년 '블랙 먼데이' 사건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블랙 먼데이에 S&P500 지수가 20% 이상 하락하는 등 주식 시장은 역대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지만 실물 경기에 큰 충격을 몰고 오진 않았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최근 주가 폭락은 1987년 블랙 먼데이 사건에 가깝고, 1998년 장기 자본시장 폭발(한국에선 IMF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이 기업·은행 파산과 대량 실업 등 실물 경기의 블록버스터급 충격이 올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1987년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빚을 내 투자했고, 주가지수는 그해 8월 최고점까지 8개월 동안 36%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미국 증시도 1987년과 같이 통화 긴축 속에서 지난 8월 고점까지 33%나 상승했다. 1987년과 올해 투자자들의 분위기에 대해 WSJ는 "투자자들은 예상 밖의 주가 상승으로 인한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불안에 떨며 매도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했다.
10월 19일 월요일에 블랙 먼데이 당일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우존스 지수는 22.61%, S&P500이 20.4% 하락하는 등 주식 시장은 하루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그러자 더 큰 마진 콜이 발생한 데 이어 잘못 설계된 자동 거래가 발생하면서 주가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다. 다만 WSJ는 "좋은 소식은 1987년은 시장이 전부였다는 것"이라며 "시장은 상승했다가 하락했고 (증시 투자자 일부를 제외하곤)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 중앙은행(Fed)이 은행에 유동성을 쏟아붓고 브로커들은 채무불이행을 저지르지 않은 덕분이다. 시장은 2년 안에 모든 손실을 만회했고 경제는 나쁘지 않았다.
1998년과 2008년은 주가 폭락이 결국 경제 전반의 침체와 위기 국면으로 이어졌다. 1998년엔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해 투자하던 헤지펀드 LTCM이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한 여파로 무너졌다. Fed는 세 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하고 기업들을 구제하며 거래를 천천히 축소했다. 미국 주가가 회복되는 데는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1997년부터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한국과 태국 등 신흥국에 추가적인 충격을 줬다. 안전자산을 찾아 미국으로 돌아온 자본은 증시에 정보기술(IT) 거품을 일으켰고, 거품이 꺼지며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 기술주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2008년은 가장 나쁜 시나리오다. 그러나 WSJ는 "현재 은행의 레버리지가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었고, 은행에 있던 위험의 상당 부분을 민간 대출 기관이 떠안았다"며 "은행은 유동성 위기에 덜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다. 큰 손실이 날 수도 있고 사모펀드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고 시스템 전체에 위기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 증시는 고점을 찍은 이후 어제까지 상승분을 반납해 연초 대비 S&P500과 나스닥 상승 폭은 9%대로 줄어들어 '정상'에 가까워졌다는 진단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