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성악가 일색의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동양인으로 성공하기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 데뷔 땐 분명 주역(퍼스트 캐스트)으로 캐스팅됐지만, 단순히 이탈리아인이 아니란 이유로 2주간 리허설 무대에도 오르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오텔로의 감정을 그 누구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명 보통의 오텔로와는 다른 ‘이용훈의 오텔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등 국제적 권위의 오페라 명가(名家)에서 잇달아 주역 자리를 꿰차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인 테너 이용훈. 그는 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토대로 만든 이 오페라의 남자 주인공 오텔로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대 흑인으로 태어났으나 탁월한 무예 실력과 명석한 두뇌로 총독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의 부하인 이아고가 손수건 한 장으로 오텔로와 그의 아내 데스데모나 사이에 오해를 불러일으켜 이들을 파멸로 몰아넣는다는 내용의 비극을 담고 있다.
베르디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페라 ‘오텔로’ 한국 공연이 오는 18~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다. 세계적 연출가 키스 워너가 2017년 영국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올린 프로덕션을 그대로 서울로 옮겨온다. 캐스팅도 화려하다. 테너 이용훈·테오도르 일린카이(오텔로 역), 소프라노 흐라추히 바센츠·홍주영(데스데모나 역), 바리톤 마르코 브라토냐·니콜로즈 라그빌라바(이아고 역) 등이 출연한다.
이용훈은 “오텔로는 테너들 사이에서 ‘하루에 세 개 오페라를 연달아 부르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악명 높은 역할”이라면서도 “겉으론 굉장히 단단해 보이지만 내면에 소심함, 연약함, 자신에 대한 강한 열등감 등 복잡미묘한 감정을 지니고 있기에 너무나 흥미롭다”고 했다. 이어 그는 “관중이 이탈리아어를 몰라도 나의 목소리만 듣고도 오텔로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얼마나 슬퍼하는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에선 영국 웨일스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을 지내고 베르디의 ‘리골레토’, 구노의 ‘파우스트’ 전곡 녹음 음반 등을 이끈 지휘 거장 카를로 리치가 포디엄에 오른다. 그는 “베르디는 단순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선율을 나열하지 않고, 극의 흐름에 딱 맞는 음을 매 순간 선택해서 악보에 적어넣었다”며 “전체의 호흡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도 성악가 한 명 한 명의 특별한 목소리를 짚어내고, 오케스트라의 폭풍 같은 음향을 살려내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