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전략회의를 하고 장단점을 분석해볼 것입니다.”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은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에서 김우진 선수(청주시청)가 금메달을 딴 직후 열린 인터뷰에서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대해 묻자 이 같이 답했다. 3년 전 도쿄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바로 파리올림픽을 준비했듯이 이날에도 LA올림픽 준비에 들어간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한국 양궁은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 단체, 남자 단체, 혼성 단체, 남자 개인, 여자 개인 등 5개 모든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양궁에서 전 종목을 석권한 건 처음이다.
정 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우리 선수들께 제일 고맙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전 종목 석권이나 금메달 수를 목표로 한건 아니었다”며 “협회나 저는 선수들이 노력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잘할 수 있도록 도운 것 뿐”이라고 몸을 낮췄다.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장인 정 회장은 지난달 24일 파리로 향했다. 파리대회 개막식 전에 도착해 양궁 선수들의 전용 훈련장과 휴게공간, 식사, 컨디션 등 준비 상황을 점검했고, 양궁 경기가 열린 기간 내내 파리에 체류하며 선수들의 컨디션을 챙겼다. 정 회장은 5일 파리를 떠나는 걸 감안하면 10여일 넘게 파리에 있는 것으로,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이처럼 한 곳에 장기간 머물러 있는 것도 드문 일이다.
이를 두고 정 회장의 양궁 지원에 대해 재계 안팎에선 보여주기가 아닌 ‘진심’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자 양궁 개인 결승전이 열린 지난 3일 3·4위전에서 패하며 메달을 따지 못한 전훈영 선수를 따로 찾아가 각별히 챙기기도 했다. 서른이 넘어 첫 출전한 전 선수가 자신보다 후배들을 챙기며 응원한 사실을 알고 직접 찾아가 감사한 마음과 격려를 전한 것이다. “메달을 중심으로 한 성적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양궁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 회장은 지난해 12월 한국양궁 60주년 행사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향후 협회의 행보에 대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공정하게 경쟁했는데 성적이 기대에 못미쳤다면 괜찮다”며 “중요한 건 품격과 여유를 잃지 않는 것으로, 그게 바로 스포츠의 가치와 의미”라고 했다. 그러면서 “양궁협회장으로서 활동에 무한한 보람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양궁협회에 직접적으로 지원한 금액은 5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다른 종목을 지원하는 다른 그룹에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정확한 금액을 밝히지 않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양궁을 지원한 건 40년으로, 국내 단일 종목 스포츠협회 후원 중 최장 기간이다.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챙기는 것도 정 회장의 스타일인 셈이다.
정 회장은 실제로 선수들과 주변에 공을 돌리면서 너무 드러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한다. 여자대표팀의 우승한 지난달 28일 인터뷰에서도 “선수들이 워낙 잘했고, 우리 선수들에게 제일 고맙다”고 먼저 공을 돌렸다. 이날엔 여기에 응원을 해준 교민들과 대통령,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등도 언급하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룹사인 현대건설의 여자 배구팀이 지난 4월 우승했을 때에도 선수들에게 투싼급 차를 한 대씩 선물해줬지만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