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anced robot
지난달 16일 경남 창원 국가산업단지에 자리 잡은 자동차 부품 중견기업 CTR의 스마트팩토리. 밀양 공장에서 단조를 하고, 창녕 대합공장에서 절삭 가공을 거친 암(Arm·서스펜션 연결 부품)이 주황색 3차원(3D) 로봇 앞에 놓여 있었다. 로봇이 부품을 집기 직전 플래시가 번쩍 터졌다. 공정에 투입하기 전 부품을 3D 로봇이 정확하게 집기 위해 비전 검사기가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후 공정에 맞는 부품을 3D 로봇이 집어 회전 테이블에 올렸다. 테이블 옆에 대기하던 또 다른 로봇은 암에 다른 부품을 끼워 넣었다.
1차 조립을 거친 이 부품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인공지능(AI) 비전 검사. CTR이 투자한 스타트업 아이브가 개발한 AI비전검사기가 부품 하부 조립에 누락된 것은 없는지, 도금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 2초 만에 검사를 끝냈다. 초기에는 작업자가 육안으로 검사했지만 2000년대 들어 카메라 비전 검사가 도입됐다. 2020년 이후엔 AI가 입체적으로 제품의 최종 검사를 도맡는다. 합격 판정을 받으면 로봇이 박스에 담아 포장한다. 이 같은 공정으로 탄생한 제품이 CTR의 컨트롤암과 볼조인트다. 컨트롤암은 자동차 본체와 바퀴를 연결하는 부품이고, 볼조인트는 자동차 바퀴의 상하 및 좌우 방향 전환이 원활히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절 부위다. CTR은 알루미늄 소재로 컨트롤암 경량화에 성공해 전 세계 전기차 회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111대 로봇이 만들어낸 생산 혁신CTR 창원 공장에는 18개 라인에 3D 로봇 111대가 사람을 대신해 열심히 팔을 휘젓고 있었다. CTR 공장이 3D 로봇 도입에 본격 나선 건 3년 전이다. 2019년부터 설비 자동화 등 스마트팩토리 시스템 설치를 고민했고, 산업용 로봇 가격이 떨어지자 2021년 말부터 공격적으로 생산 현장에 배치했다. 김옥헌 CTR PI팀장은 “이전에도 자동화는 있었지만 소품종 대량 생산에 어울리는 시스템이어서 다른 제품을 만들기 위해 라인을 교체하려면 4~8시간씩 걸렸다”며 “이젠 2~3개 다른 제품을 한 라인에서 교체 없이 제작할 수 있어 다품종 소량 생산에 특화했다”고 설명했다.
공장 곳곳에서는 직원들이 태블릿PC를 들고 다녔다. 디지털전환(DX) 이후 태블릿을 통해 실시간 현장 점검 정보를 기록하고 공유한다. 태블릿 사용 전에는 설비 수리 후 직원이 사무 자리에 돌아가서 정보를 입력했는데, 곧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내용을 까먹거나 종이를 분실하는 일이 있었다. 이를 태블릿을 통해 즉시 입력해 휴먼에러를 줄일 수 있게 됐다. 설비 고장 여부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해졌다. CTR은 스마트팩토리로 전환한 이후 생산성과 품질 등 각종 지표가 올라갔다. 2022년 기준 잔업과 특근시간이 7517시간이었는데 지난해 7078시간으로 5.8% 감소했다. 736PPM(1PPM은 100만분의 1)이었던 공정 불량률은 15PPM으로 97.9% 낮아졌다. 열 명치 몫 하는 로봇 정직원공장에만 로봇이 있는 건 아니다. CTR홀딩스에는 사원번호 ‘DX#108282’를 달고 있는 또 다른 로봇이 근무하고 있다. 알파몬이라는 이름의 이 로봇은 홀로 컴퓨터 7대를 켜고 쉼 없이 업무를 처리한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에 주로 투입되는 알파몬은 1년에 약 1만5600시간 일한다. 일반 직원 10명 이상이 1년에 수행하는 업무량이다.
이 시스템은 로보틱스프로세스자동화(RPA)로 CTR은 2019년부터 도입했다. 이 시스템 적용 후 약 130건의 업무를 자동화했다. 오류 감소율은 20%, 연간 약 5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 이동엽 CTR홀딩스 DT팀장은 “RPA 도입 전에는 생산 관리 담당자가 매일 아침 고객사 홈페이지에서 생산 계획을 내려받아 우리 회사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에 등록하는 작업을 일일이 수행했다”며 “알파몬 도입 후 해당 업무에서 해방됐다”고 말했다. CTR은 DX 추진 과정에서 각종 정부 지원사업을 활용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생산운영 시스템과 설비 인터페이스, 물류 관리 시스템 등을 개발하고 고도화했다. 혁신 물꼬 튼 기업 승계CTR은 1952년 창업주인 강이준 회장이 부산 국제시장에서 ‘신라상회’라는 이름으로 연 자동차 부품 가게로 출발했다. 3세 경영인인 강상우 부회장이 2012년 회사에 들어온 뒤 부문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10년간 혁신을 거듭했다. DX를 본격화하기 전인 2019년 그룹 매출은 1조1196억원이었는데 지난해 1조9400억원을 거뒀다. 강 부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인데 관행적인 업무 처리와 데이터 기반 운영을 하지 못한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DX솔루션을 개발했고 앞으로도 더 변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DX 핵심은 '하던대로' 방식 벗어나는 것
CTR, 데이터 수집해 체계적 의사결정…'데이터마트'서 115개 지표 실시간 확인Big data
CTR의 디지털전환(DX) 핵심은 디지털화와 데이터를 활용한 혁신이다. 관행적인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 체계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조 현장에선 ‘하던 대로’가 익숙해 바꾸는 데 쉽지 않았다는 것이 CTR 측 설명이다.
CTR은 DX를 위해 데이터 수집부터 시작했다. 2012년 이전에는 현장에서 작업실적, 부적합 수량, 비가동 내역과 같은 현장 데이터를 작업일보에 수기로 작성했다. 이를 변경하기 위해 2012년 생산시점관리 시스템을 설치했다. 2022년에는 설비 센서를 활용해 실시간 공장 생산정보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데이터가 쌓이면서 공장 작업자와 품질관리 담당자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공정의 작업 수준과 제품 수준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자 내부에서 정한 기준에 못 미치는 품질 문제가 생겼을 때 관리자에게 알람이 울려 즉각적인 조치가 가능해졌다. 고승범 CTR홀딩스 ICT본부장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뀌자 현장과 사무직 모두에서 보이지 않던 낭비 요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각종 보고서를 클릭 한두 번으로 뽑아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매출과 영업이익 같은 지표부터 재고 현황, 수출실적 등에 이르기까지 ‘데이터마트’라는 이름의 클라우드에 올려놨다. 사용 부서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부서에 데이터 접근 권한만 요청하면 어떤 보고서든 자동으로 생산할 수 있다. 강상우 CTR 부회장은 “다른 회사에서는 경영진을 위한 보고서 올리기가 많은데 우리는 실무진이 매일 보고서를 쓰는 데 들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보고서 자동화’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보고서 자동화 시스템 도입 후 115개 주요 지표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강 부회장은 “시스템에 있는 자료를 내려받아 엑셀로 정리한 뒤 파워포인트로 꾸미는 시간을 줄이고 정말 사람이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바꿨다”며 “갑작스러운 이슈가 발생할 때 선제적 대응이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디지털·AI 생소했던 CTR…스타트업과 협업 '신의 한수'
아이오코드·아이브…15곳에 284억 투자Collaboration
CTR의 디지털전환(DX) 과정에서 눈여겨볼 핀포인트는 스타트업과의 전방위적 협업이다. CTR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총 15개 회사에 284억원을 투자했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엄선했다. 이후 각 스타트업이 제품을 만들면 CTR이 시범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제조 현장에 투입했다. CTR은 앞선 기술을 써볼 수 있고, 스타트업 입장에선 상용화를 위한 레퍼런스(사용실적)를 빠르게 쌓는 윈윈 구조였다.
창원 공장 공정 마지막 단계에서 품질 검사에 쓰이는 비전 인공지능(AI) 검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CTR과 아이오코드, 아이브(AiV)는 AI 기술을 접목해 검사 공정을 개발했다. 산업용 딥러닝 컴퓨터비전 솔루션 기업인 아이브는 최근 삼성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해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협업툴 스타트업 스윗테크놀로지스도 CTR이 투자한 회사다. CTR은 스윗의 1호 도입 기업으로 국내 총판도 맡고 있다. 강상우 CTR 부회장은 “스타트업에는 레퍼런스를 쌓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스타트업들은 CTR과 협업했다는 사례를 들어 다른 회사를 찾아다니면서 마케팅할 수 있고 또 직접 써봤더니 좋다며 다른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제가 권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내 문화 혁신을 촉진하는 데도 스타트업과의 협업이 효과를 낸다는 게 강 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제조업 기반인 우리 회사에서 ‘혁신하자’고 외쳐도 실제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며 “스타트업을 하는 청년들이 창원에 내려와 며칠씩 같이 일하고, 그들의 업무처리 방식과 문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자극이 되기 때문에 배울 건 배우고 그러면서 우리도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CTR만의 DX 시스템을 상품으로 만들어 최근 동종 업계에 판매했다. CTR의 정보기술(IT) 계열사인 포메이션랩스는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전문회사로 거듭났다. CTR 창원·밀양 공장의 스마트팩토리 시스템 안착을 성공 사례로 삼아 지난 5월 자동차 부품 중견기업 삼기의 신규 공장 설치 건을 수주했다.
창원=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