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연계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퇴직연금 운용에 국민연금이 참여하자는 제안이다. 2005년 제도 도입 후 퇴직연금 수익률이 기대에 못 미쳐왔기에 나온 목소리다. 2.35%란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익률만 봐도 같은 기간 국민연금 연평균 수익률(6.86%)에 한참 뒤진다.
그런데 양쪽의 차이가 어디서 비롯했는지를 깊게 들여다보면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그 원인은 ‘공적 대 사적’이란 제도 성격이 아니라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퇴직연금은 금융회사와 사용자가 맺는 금융 계약처럼 유지되지만, 국민연금은 수탁자 책임에 의존한 기금형으로 운용된다. 국민연금이 채택한 기금형은 세계적으로 퇴직연금의 일반적인 지배구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퇴직연금 제도에서는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장관 주관 아래 국민연금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를 통해 세계 2위를 다투는 거대 단일 기금으로 운용된다. 즉, 국민연금 적립금 1114조원(올 5월 기준)은 엄격하고 투명한 투자 원칙 아래 투자 전문가에 의해 글로벌 포트폴리오로 굴려진다. 퇴직연금에서는 380조원의 적립금이 40개 퇴직연금 사업자로 쪼개져 운용된다. 그뿐 아니라 중요한 투자 결정은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한 100만 명의 사용자(DB)와 400만 명의 가입근로자(DC)가 개별적으로 내린다. 이러니 90%가 수익률은 낮지만 안전한 원리금보장형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퇴직연금에서도 기금형을 도입해 국민연금이 지닌 장점이 발휘되게끔 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다만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한다. 첫째, 퇴직연금기금을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도 설립할 수 있어야 한다. 준비된 금융기관과 기업이 퇴직연금기금을 설립하면 오로지 성과로 평가받는 경쟁 시장이 조성돼 그 과실을 근로자가 챙길 것이다. 2000년 스웨덴 정부가 공적연금 보험료의 일부를 국민이 직접 운용하는 부분 민영화를 단행하며 운용 플랫폼으로 AP7이라는 기금을 세웠고, 보험회사 등의 민영기금과 경쟁하게 해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둘째, 굳이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시장에 들어오기보다 2022년 30명 이하 중소기업을 위해 출범한 중소기업 퇴직연금기금이 국민연금 수준의 위상과 인프라를 갖추게끔 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미 정부 기금이 있는데 국민연금까지 들어오면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 논란이나 연금 제도의 성격 차이로 인한 마찰 등이 우려된다.
끝으로 기금형이 노조의 힘을 키우는 수단이 될 것이란 우려는 버려야 한다. 그 막연한 비용이 예·적금 일색인 계약형에서 놓친 투자 기회비용에 비교할 바는 아니다. 모수 조정의 늪에 빠진 국민연금과 달리 퇴직연금제도가 기금형 도입을 통해 질적으로 연금개혁을 이루고 국민 노후 소득 보장을 강화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