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엔저 시대’가 저물면서 엔화 투자자들이 고민에 빠졌다. 860원대에 머물던 원·엔 환율이 920원을 넘어서면서다. 기존 투자자들은 수익 실현 시점을 고민하고 있고 투자 여부를 망설이는 예비 투자자도 적지 않다. 향후 엔화 투자 전망과 전략을 국내 시중은행을 대표하는 프라이빗뱅커(PB)들에게 물었다.
스마트머니는 920원에 손절일본은행(BOJ)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원·엔 환율이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오후 3시30분 종가)은 전날보다 4원61전 오른 921원70전에 마감했다. 나흘 연속 오름세다. 앞서 일본은행이 단기 정책금리를 연 0∼0.1%에서 연 0.25%로 인상하면서 엔화 가치가 급등했다.
그간 역대급 엔저가 이어지면서 엔화 투자 열기가 뜨거웠다.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조2111억엔에 달했다. 다만 지난달 하순부터 엔화 가치가 급등하자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엔화 예금 잔액이 작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전월 대비 감소(-818억엔)했다.
그렇다면 엔화 투자자들은 어느 정도 수익을 냈을까. 엔화의 원화 대비 가치가 가장 떨어진 것은 6월 말이었다. 지난달 28일 100엔당 855원60전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수익률을 온전히 가져간 투자자는 극히 드물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함박눈 신한 PMW 잠실센터 PB팀장은 “작년 11월 투자자들의 수익률이 7%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이보다 비싸게 엔화를 산 고객들은 이제 손실을 면하거나 조금 수익이 난 수준”이라고 했다. 정성진 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800원 후반대 투자에 나선 투자자들은 이후 원·엔 환율이 더욱 하락해 괴로운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이서윤 하나은행 Club1센터 PB부장은 “일부 스마트 머니의 경우 장중에 920원을 터치할 때 비과세로 수익을 실현했다”고 전했다. ETF보다 직접 보유가 유리전문가들은 향후 엔화 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다. 상승 여력보다 변동성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도아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지점장 “일본이 생각보다 빠르게 금리를 올리면서 눌려 있던 엔화가 단기간에 튄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함박눈 팀장은 “원·엔 환율이 900~930원 선을 오가며 공방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내년까지 염두에 둔 장기 투자자도 있다. 이서윤 부장은 “가파르게 오른 탓에 900원 선까지 조정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1000원대 돌파 가능성을 보고 자산을 유지하고 있는 슈퍼리치도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투자해야 한다면 비과세 혜택이 주어지는 환차익을 노린 투자가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김도아 팀장은 “일본 증시에 상장된 미 국채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한 사람은 예상보다 엔화 가치가 더욱 하락한 데다 미국 국채 금리는 되레 오르면서 손해를 봤다”며 “두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하는 난이도 높은 투자보다는 비과세 환차익을 얻을 수 있도록 엔화를 직접 보유하는 것이 낫다”고 진단했다. 이서윤 부장은 “ETF 투자를 하려면 환헤지 상품을 택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정성진 부센터장은 “환 투자는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긴 싸움이 필요한 투자”라며 “한 번에 높은 수익을 기대하지 말고 915원, 925원, 935원 등 환 구간을 나눠서 매도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