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사람들’이 있다. 그 가운데 확고히 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맡아 각종 무역정책을 주도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하는 미국·캐나다·멕시코 협정(USMCA)을 탄생시켰고, 중국과 무역 전쟁을 치렀다. 미국 철강·알루미늄 산업을 보호한다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다.
그 라이트하이저가 책을 냈다. <자유무역이라는 환상>이란 책이다. 자신의 정책 철학을 담았다. 그는 “무역정책은 노동 계급 가정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무조건적인 자유무역에 반대한다고 명확히 말한다. 회고록 성격도 있다. 어떻게 트럼프를 알게 됐는지, 그의 밑에서 USTR 대표를 맡아 어떻게 중요한 협상들을 진행했는지 풀어놓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벌였던 그는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지만, 유럽 일부 국가와 마찬가지로 양국 간 경제 관계는 균형을 잃었다”고 했다.
라이트하이저는 1987년 9월 뉴욕타임스 등 주요 일간지에 실린 트럼프의 전면 광고를 보고 그의 팬이 됐다고 한다. 트럼프는 ‘미국 국민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광고에서 “수십 년 동안 일본과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이용해왔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세계 경찰 노릇을 하는 동안 다른 나라들이 공짜로 평화를 누렸고, 미국은 막대한 무역적자라는 비용도 치르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의 뿌리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라이트하이저도 트럼프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1990년대 시작된 급진적인 자유무역 결과, 미국은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잃었고 무역적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진단한다. 라이트하이저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무역대표부 차관으로 일했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는 레이건 대통령은 자유무역을 믿었지만,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믿었다고 강조한다.
그의 비판은 일견 타당하다. 예컨대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옹호한 사람들은 그로 인한 과실만 자랑할 뿐 피해를 본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는 게을렀다. 자유무역을 장려하는 경제학 이론도 이럴 때 적극적인 재분배와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또 말로는 자유무역이지만 실제로는 공정하지 못한 거래인 경우가 많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미국 등 거대 시장에 자국 상품을 내다 팔 기회를 얻었지만, 자국 시장은 철저히 보호했다.
하지만 너무 나아갔다. 무역 흑자는 ‘좋은 것’, 무역 적자는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다. 무역 적자는 부를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내 여러 문제를 중국 등 다른 나라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또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미국 경제를 너무 비관적으로 본다. 미국 경제도 나름의 문제는 있지만 무역 흑자국인 중국, 일본, 독일보다 더 혁신적이었고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그는 이런 부분은 잘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내놓은 처방도 급진적이다. 그는 모든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 적자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관세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자들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몇 년 전 철강·알루미늄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부과했을 때도 해외에서 싸게 철강·알루미늄을 사서 제품을 만들던 업계는 도리어 피해를 본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로 인한 일자리 파괴가 자국 철강·알루미늄 산업 보호로 일한 일자리 창출보다 크다는 것이었다. 물론 라이트하이저는 자신의 25% 철강 관세가 미국 내 철강 제조에 220억달러 신규 투자를 이끌었다고 자랑한다. 그는 미국 금융 자산을 매수하는 외국인 자금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약달러를 유도하는 방안 등도 무역 적자를 줄일 방법으로 거론한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무역정책을 펼지 가늠하게 하는 책이다. 재집권 시 라이트하이저의 기용은 정해진 수순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는 “이 책은 내 행정부가 어떻게 중국에 맞서고, 수십 년 동안 미국 노동자들을 착취해온 세계주의자, 공산주의자들과 싸웠는지를 설명하는 걸작”이라고 추켜세웠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