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둔화 조짐이 짙어지고 있다. 뜨거웠던 노동 시장이 빠르게 식어가고, 제조업 경기 지표도 연이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9월 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미국 국채 10년물은 1일(현지시간) 오후 9시 연 3.96%에 거래되며, 금리 4%대가 붕괴했다. 올해 2월 2일 이후 최저치다. 나쁜 뉴스가 곧 나쁜 뉴스한때 주식 및 채권 시장에선 경제 지표가 안 좋게 나오면 금리 인하를 가져올 수 있는 좋은 뉴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근 월가에선 나쁜 뉴스를 나쁜 뉴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국채금리 급락도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보다 경기 둔화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최근 노동시장 지표들이 일제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주(7월 21∼27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24만9000건으로 한 주 전보다 1만4000건 증가했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해 8월 첫째 주간(25만8000건) 이후 약 1년 만에 가장 많은 건수로,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23만5000건)도 웃돌았다.
미국 고용정보업체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은 7월 미국의 민간기업 고용이 전월 대비 12만2000명 증가했다고 최근 밝혔다. 7월 증가 폭은 지난 1월(11만1000명)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작았으며,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15만명)도 밑돌았다. 임금 상승률은 전년 대비 4.8%로 2021년 8월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았다.
미국 제조업 업황도 예상보다 더 나쁘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는 지난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6.8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50 이상이면 경기 확장, 이하면 위축을 뜻한다. 이는 시장 예상치 48.8을 하회하는 수치다. 7월 수치는 전월 치인 48.5도 밑돌았다.
바이털놀리지의 아담 크리사풀리 전략가는 “ISM PMI의 예상치 하회는 국내 경제 성장 여건이 냉각되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라며 “Fed가 9월까지 기다리지 않고 전날 금리인하를 시작했어야 한다는 또 다른 신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뉴욕 3대 지수 큰 폭 하락주식시장도 더 이상 나쁜 경제지표에 호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본격적인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날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1.58% 내렸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2.76% 내렸다.
S&P500지수 옵션에 기반해 변동성을 측정하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도 이날 장중 19.48을 기록, 지난 4월 19일 이후 3개월여 만에 가장 높았다. VIX는 주가지수와는 반대로 움직여 공포지수로도 불린다. VIX지수는 이후 전장 대비 2.23(13.63%) 오른 18.59로 장을 마감했다.
정치적으로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의 대선 유력 후보로 급부상하며 국채금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우 공약으로 관세 인상, 이민 제한 등을 내세웠고, 시장에선 그가 당선될 경우 인플레이션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한 때 장기 국채금리가 급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리스 부통령이 돌풍을 일으키자 이같은 장기 국채 금리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