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한판승을 따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빠른 ‘번개맨’.”
국제유도연맹(IFJ)이 한국 유도 이준환(22·사진)을 소개하는 문구다. 31일(한국시간) 2024 파리올림픽 유도 남자 81㎏급에서는 이준환의 ‘번개 같은’ 경기가 빛을 발했다. 동메달 결정전 연장전에서 세계랭킹 1위 마티아스 카스(벨기에)를 절반승으로 제압하고 메달을 거머쥐었다. 메달이 확정되자 이준환은 아쉬움의 눈물을 쏟았다. 그는 “내 실력이 부족했다.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준환의 이번 메달은 한국 유도에 의미가 크다. 이번 대회 유도에서 허미미에 이어 따낸 두 번째 메달이자 2012년 런던 대회 김재범의 금메달 이후 12년 만에 81㎏급에서 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유도의 부활을 알렸다.
이준환은 시니어 무대 등장과 함께 세계적 강자로 자리 잡았다. 시니어 국제무대 데뷔전이었던 2022년 6월 트빌리시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하고, 20일 만에 또다시 우승을 추가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유도를 시작한 이준환은 고등학교 시절, 남자 73㎏급 국가대표 이은결(23)에게 좌절을 경험했다. 당시 같은 체급에서 맞붙었던 그는 다섯 번을 연속으로 지고 “유도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주특기인 소매들어업어치기 기술을 완성했다.
국제대회에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다가왔다. 경쟁자들은 그를 치밀하게 분석했고, 그의 주무기인 업어치기에 대응하는 방법을 개발해냈다. 견제가 심해지면서 잔 부상도 늘었다.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도 되치기당한 그는 “이기는 유도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올림픽을 앞두고 잡기를 내어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선공에 나설 수 있도록 포석을 까는 데 집중했다.
이준환은 8강까지 파죽지세로 올라왔다. 16강과 8강에서는 연속 한판승을 거뒀다. 그러다 준결승에서 ‘숙적’ 타토 그리갈라슈빌리(조지아)에게 발목을 잡혔다. 뼈아픈 패배의 충격이 컸지만, 평정심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준환은 “경기(준결승전)는 이미 끝났고, 내가 고민하고 자책한다고 해서 시간을 돌릴 수도 없다. 동메달리스트가 되는 것과 스스로 해이해지고 안일해지고 방심해서 4위가 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계속해서 이미지트레이닝을 했다”고 말했다.
이날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이준환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카스가 연장전 시작 48초에 메치기를 시도하자 이준환이 빈틈을 노려 발을 걸어 안뒤축후리기 절반을 따냈다.
이준환의 눈은 이미 4년 뒤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을 향하고 있다. 그는 “그리갈라슈빌리를 세계선수권에서 두 번 만났는데 다 졌다. 그래서 더 많이 연구했는데 부족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올림픽을 통해 시야가 더 넓어졌다”며 “LA올림픽 때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