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초강대국' 준비하는 미국…한국은? [한경 코알라]

입력 2024-07-31 10:31
수정 2024-07-3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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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28일 새벽, 트럼프가 세계 최대 비트코인 행사에서 비트코인 전략준비자산(strategic reserve asset)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재선 이후 미국은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크립토(가상자산) 중심지’, ‘비트코인 초강대국’을 향해 달려 나갈 것이며, 해리스 측도 가상자산 관련 기조 변화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질서 하에 가상자산이 반도체, 인공지능과 함께 새로운 대세가 된다면, 한국은 그것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을까? 함께 날아오르는 트럼프와 비트코인“Divine Intervention(신의 개입)”. 트럼프 총격 사건 이후 미국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다. 현지시간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 주 버틀러에서 유세를 벌이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머리를 노린 총탄은 기적적으로 트럼프의 귀만 스치고 지나갔다. 미디어를 잘 아는 트럼프는 그 순간 경호원들을 제치고 일어나 “싸우자(Fight)!”를 외쳤고, 푸른 하늘과 거대한 성조기 아래 피 묻은 얼굴로 주먹을 들어 올린 트럼프의 사진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이오지마 성조기 게양’ 사진, 더 나아가 프랑스혁명 배경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까지 떠올리게 하는 사진 한 장의 힘은 대단했다. 노쇠한 바이든 대통령에 대비되는 강력한 이미지에 미국 공화당의 주 무기인 애국심과 자유라는 키워드, 더군다나 현임 민주당 행정부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야당 투사의 서사까지 완성해 버렸다.

트럼프 피격 사건 이후, 비트코인도 한 주간 약 10%가량 크게 상승했다. 현임 시절 크립토(가상자산)를 지지하지 않던 트럼프는 2024년 대선 캠페인에서는 ‘크립토 대통령’을 표방하며 가상자산으로 후원금을 받는 것은 물론, 대표적인 가상자산 반대론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그 ‘패거리’를 몰아내겠다’라고 공언하는 등 강경 크립토 지지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크립토 업계도 트럼프와 공화당을 조직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오랜 기간 임의적이고 불명확한 기준으로 크립토 업계를 압박한 데에 대한 미국식 합법적 저항이다. 트럼프의 비트코인 전략 자산화 공약현지시간 7월 27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크립토 업계 최대 행사인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 등장한 트럼프는 ‘취임 첫날 개리 겐슬러(미 증권거래위원장)를 해임하겠다(On day 1, I will fire Gary Gensler)’라고 약속했다. 기립박수와 함께 트럼프를 연호하는 청중에게 트럼프는 ‘그가 그렇게 인기가 없는지 몰랐다’며 다시 한번 겐슬러 해고를 천명했다.

또한 트럼프는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전략비축물자(strategic national stockpile)로 만들 것이며, 미국이 크립토 중심지(crypto capital of the planet), 비트코인 초강대국(bitcoin superpower)이 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비트코인은 자유, 주권, 정부의 강압과 통제에 맞서는 자유(freedom, sovereignty, and independence from government coercion and control)를 상징한다’라고 말해 청중을 다시 열광시켰다.

이어 트럼프는 현재 미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 21만 개를 팔지 않고 보유할 것이라며, ‘당신들도 비트코인을 절대 팔지 마라’, 비트코인이 ‘투 더 문(to the moon)’할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트럼프의 연설 직후 연단에 오른 신시아 루미스 상원의원(와이오밍주, 공화당)은 ‘비트코인 전략준비자산(strategic reserve asset)’ 법안을 소개했다. 본인이 ‘비트코인 상원의원(bitcoin senator)’이라고 소개한 루미스는 트럼프가 언급한 21만 개에서 시작해 1백만 개 비트코인을 미국 정부가 전략준비자산으로 최소 20년간 보유할 것이며, 이는 미국 정부의 부채 문제를 해결할 용도로만 사용될 것이라고 본인의 법안을 설명했다.

부담은 최소화하며 최대한의 효과를 발생시키게끔 정교하게 설계된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와 루미스의 이번 발언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금, 특별인출권(SDR), IMF 포지션, 외화로 구성된 미 연준의 준비자산(reserve asset)에 비트코인을 포함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이 금과 같은 지위라는 것을 미국 정부가 공인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79만 개의 비트코인을 정부 차원에서 매수하고 보유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한 것이기에 시장에 미칠 영향도 클 것으로 보인다. 선거용 공약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이 발언이 결국은 지켜지지 않을 선거용 ‘멘트’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트럼프 주위의 인물들과 현재 미국 정가의 상황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J.D. 밴스는 비트코인을 10만 달러 이상 보유했다고 신고한 바 있는 비트코인 홀더(holder)다. 차기 재무장관 하마평이 돌았던 제이미 다이먼 JP모 회장은
그간 크립토를 강력히 비난해 왔지만, 최근 트럼프가 다이먼 회장의 ‘태도가 변했다(changed his tune)’고 평한 바 있다. 역시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된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을 주도한 인물이자 최근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이용한 자산 토크나이제이션(tokenization)에 앞장서고 있다. 래리 핑크는 트럼프가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지목한 15일 CNBC 방송에 출연해 비트코인은 ‘합법적인 금융 상품’이며, 본인이 비트코인의 강력한 지지자(major believer)라고 말했다.

이전부터 크립토 지지 발언을 해온 페이팔과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는 물론, 피터 틸, a16z로 유명한 Andreessen Horowitz 등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리스트(VC)들도 트럼프 지지 의사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실리콘밸리도 트럼프와 크립토에 베팅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든의 부통령이자 트럼프의 라이벌인 해리스에도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비트코인 2024’ 행사가 끝난 후 민주당 의원들이 이번 대선에서 크립토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기 시작했으며, 코인베이스와 리플 등 크립토 업계 주요 업체들과 해리스가 접촉을 시작했다는 소식도 보도되었다. 대선 이후 미국의 방향성현재 글로벌 금융 및 기술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화두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이다. 인공지능 기술 혁신이 가시적 성과를 보인 후, 고성능 반도체 품귀 현상이 벌어지며 반도체 기업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챗 GPT가 세상을 놀라게 하기 전부터 탈중앙화 네트워크를 인공지능 개발에 활용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 왔다. 지난 4월 반감기 이후 일부 비트코인 채굴업자들이 기존 시설을 인공지능 연산 제공 용도로 전환했고, 최근 그레이스케일사가 인공지능 관련 가상자산 여러 개를 묶어서 ‘탈중앙화 인공지능 펀드’를 출시하는 등 인공지능과 반도체는 탈중앙화 고성능 연산 네트워크라는 부분에서 블록체인과 크립토 산업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비트코인 채굴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환경을 파괴한다는 비난을 받아 왔는데,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만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녹색 사기(Green scam)’이라 비난할 정도로 방향성이 다르다. 더군다나 트럼프는 ‘남아 있는 비트코인 전부를 미국에서 채굴하자’, ‘우리가(미국이) 나서지 않으면 중국이 가져간다’라고 말할 정도로 비트코인 채굴에도 적극적이다.

감히 예상하건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그리고 크립토의 글로벌 주도권을 확보하려 정부 차원에서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블랙록과 JP모간 등을 필두로 한 미국 금융권과 일론 머스크, 피터 틸, a16z 등 실리콘밸리 유력인사들이 앞장설 것이다.

트럼프가 ‘겐슬러 해고’를 천명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간 억지 ‘증권성 시비’로 크립토 생태계 성장을 가로막아 온 SEC에는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미국에는 SEC 리스크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민간 업체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자본도 풍부하다. 법적 불명확성이 해소되는 직후 크립토는 미국 주도로 금융과 기술 산업의 새로운 글로벌 대세가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이렇게 거대한 변화가 임박했는데도 한국의 가상자산 생태계는 여전히 2017년 말에 머물러 있다. 정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을 발표한 후,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투자와 거래는 차단되었고, 일반 기업들조차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을 하지 못한다. 개인만 거래할 수 있는 가상자산 거래시장은 최초로 인터넷 은행과 협업한 1개 거래소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며,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 급등락 현상이 빈발하고 있다.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으로 인해 발행시장도 원천 차단돼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을 이용한 서비스를 만들려는 시도는 국내에도 있었으나, 2017년 긴급대책이 초기코인공개(ICO)를 전면 금지하며 ‘사실상 불법’이 되었다. 일부 기업들이 해외에 기업이나 재단을 설립하여 사업 추진을 시도했으나, 정부와 사회의 눈치를 보며 해외 법인까지 운영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 업체는 많지 않았다.

블록체인의 핵심은 탈중앙화이고, 가상자산 산업의 핵심은 생태계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가치는 네트워크상에서 운영되는 서비스(디앱, dApp)와 그 이용자들의 활동에서 나오고, 그렇게 생태계가 성장하면 그 가치는 코인과 토큰의 가치가 되어 개발자들과 보유자들에게 돌아간다. 2017년 정부 대책은 기관과 기업의 진입을 차단하고 서비스 개발을 어렵게 해서 국내 가상자산 생태계가 성장하는 것을 원점부터 차단해 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고, 미국은 대대적으로 가상자산 산업을 성장시켜 글로벌 주도권을 가져가려 하는데, 우리는 7년 전과 달라진 것 없이 ‘광풍 차단’에 아직도 매달려 있다. ‘나쁜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SEC 리스크가 해소된 미국에서 획기적인 블록체인 서비스가 출시되면 한국 사람들도 다 그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을까? 구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가 그 선례다. 한국에도 국산 검색엔진과 싸이월드라는 소셜미디어가 있었지만, 구글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빠르게 점유율을 빼앗겼다. 지금도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앱은 유튜브다. 구글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는 재미있는 내용 보여주고 광고를 보여주고 말았지만, 블록체인 앱은 사용자의 자산과 금융 활동에 직접 연결될 것이며, 한국인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지금이라도 국내 가상자산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미국 크립토 ‘킬러앱’이 한국인의 자산과 금융을 점령하기 전에, 국내에서 만든 블록체인 서비스들이 한국인의 스마트폰을 선점해야 한다. 그것을 만들어 낼 국내 가상자산 생태계는 고사 직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초토화된 상태다. 소멸되기 전에 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과 금융기관이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에 투자 및 협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정부가 2017년 긴급대책을 철회한다는 제스처, 최소한 ‘재검토’한다는 언급만 해 주어도 생태계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미국에서 불어오는 크립토 바람은 국내에서도 감지하고 있고, 기업들과 자본은 그 바람을 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7월 19일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됐다. 이용자 보호의 최소한의 틀이 마련된 것이다. 그 틀 안에서 이제는 산업 육성해야만 한다. 때를 놓쳐 국내 시장 다 빼앗기고 나서 ‘K-블록체인’ 추진한다는 말이 나올까 봐 두렵다. 그 지각 비용은 구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시장을 빼앗긴 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