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게임체인저 배터리' 양산 1년 앞당긴다

입력 2024-07-30 17:32
수정 2024-08-07 17:01
삼성SDI가 전기차 판매 둔화에도 불구하고 투자 속도를 늦추지 않기로 했다. 다른 배터리 기업들과는 다른 행보다.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편광필름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덕분에 상대적으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도 투자를 이어갈 체력이 있어서다.

삼성SDI는 기존 2170(지름 21㎜, 높이 70㎜) 배터리보다 에너지 용량이 크고 생산 단가가 저렴한 지름 46㎜(46파이)짜리 중대형 원통형 배터리 양산 시기를 1년 앞당기기로 했다. 미국 자동차 회사 스텔란티스와 짓고 있는 합작공장도 당초 계획보다 빠른 올 4분기에 조기 가동하기로 했다.

“투자 계획 변동 없다”삼성SDI는 30일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상반기 기준으로 전년 대비 두 배 수준(약 3조원)의 투자를 집행했다”며 “향후 중장기 투자 계획에도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내 헝가리 공장 증설을 완료하고, 스텔란티스와의 미국 합작공장 양산 시점도 예정(내년 1분기)보다 앞당기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대다수 배터리 기업이 설비 투자를 축소하거나 공장 가동 시점을 늦추는 것과 대비된다.

차세대 배터리 투자도 계획대로 진행한다. 2027년 양산 목표인 전고체 배터리는 5개 자동차 업체에 샘플을 넘겨 테스트하고 있다. 손미카엘 삼성SDI 부사장은 “고객사가 전고체 배터리 성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생산라인 투자 계획도 마무리 단계”라고 설명했다.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46파이 원통형 배터리 양산 시기는 2026년에서 내년 초로 1년가량 앞당겼다. 전기스쿠터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에 먼저 공급해 상품성을 검증한 뒤 전기차용 제품을 내놓기로 했다. 46파이 배터리는 현재 주력인 2170 배터리보다 용량이 크고 생산 단가가 싸다는 점에서 배터리 시장을 뒤흔들 만한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삼원계 배터리에 비해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기존 목표대로 2026년 ESS용 제품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전기차용 LFP 제품도 순차적으로 내놓을 방침이다. 수익성 중심 경영 ‘주효’삼성SDI가 투자 계획을 수정하지 않는 배경에는 상대적으로 나은 경영 실적이 자리 잡고 있다. 삼성SDI는 2분기에 매출 4조4501억원, 영업이익 2802억원을 올렸다고 이날 발표했다. 각각 전년 동기보다 24%, 38% 감소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2분기 195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는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생산 보조금(AMPC)을 제외하면 2525억원 적자였다. SK온은 2분기 4000억원대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 실적이 둔화한 것은 주요 고객사인 BMW, 폭스바겐, 아우디 등이 전기차를 많이 못 판 탓이다. 전동공구에 쓰이는 원통형 배터리 판매량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줬다. 버팀목이 된 건 ESS용 배터리와 편광필름 등이었다. 미국 최대 전력 기업인 넥스트에라에너지와 1조원 규모의 ESS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앞둔 만큼 ESS 실적은 한층 더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SDI는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에 비해 생산설비 투자에 신중했다. 배터리 시장에 불이 붙은 2년 전만 해도 “투자를 늦췄다가 시장을 빼앗길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캐즘이 오자 오히려 수익성 확보에 도움이 되고 있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하반기 환경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