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기계부품연구원과 경북경제진흥원이 임금 인상, 지원 복지에 쓸 수익금을 초기 벤처기업 및 뿌리기업들에 투자해 알짜기업을 키워내고 있다. 인건비 등을 자체적으로 벌어 써야 하는 기업 지원 기관들 입장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모사업 규모를 늘려 기관 생존에 급급한 것과 큰 대조를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대구기계부품연구원에 따르면 대구 성서산업단지에 2001년 개원한 대구기계부품연구원의 송규호 원장과 직원들은 매주 2회 이상 산단 현장의 기업을 찾는다. 제대로 된 부설 연구소가 없어 연구개발(R&D)은 꿈도 꾸기 어려운 뿌리기업이나 성장통을 겪는 초기 벤처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기 위해서다. 대부분 매출 50억원, 종업원 30명 이하의 작은 기업들이다. 송 원장은 “정부나 지자체의 R&D 정책에 소외된 기업들 중엔 조금만 도와주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역량을 갖춘 기업이 많아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구원이 이런 지원을 할 수 있던 것은 20년 동안 열심히 쌓은 적립금의 일부를 과감히 떼내 기업 지원에 나선 덕분이다. 2010년 이후 지원한 자체 사업 규모는 30개 사업, 14억원을 넘어섰다. 연구원의 지원으로 대구에서는 가상현실(VR) 기반의 군사 훈련용 시뮬레이터를 개발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옵티머스시스템, 로봇캐디를 개발해 100억원대 매출 기업을 이룬 티티앤지 등 10여 개 강소기업을 키웠다. 배터리 교체형 이륜전기차 기술 개발도 지원해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과 미래사업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이태희 티티앤지 대표는 “자율주행 로봇 개발에 필요한 구조역학, 내구성 시험은 물론 핵심 모듈과 요소기술 개발을 연구원이 전폭 지원했다”고 말했다.
경상북도와 시·군의 대행사업만 주로 해오던 경북경제진흥원도 2년 전부터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흥원은 그간 각종 대행사업 가짓수와 규모가 커 자체 사업을 벌이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4억7500만원의 자체 예산으로 25개 청년 기업의 성장과 소상공인의 인공지능(AI) 마케팅을 도왔다. 경북 상주에 있는 아워시선의 이민주 대표는 진흥원의 지원으로 후배 기업 4곳과 함께 지난달 중소벤처기업부의 로컬브랜드 상권 창출 사업(10억원)을 따내 함창 명주를 통한 지역 활성화 사업에 나섰다.
진흥원은 또 AI 쇼호스트를 활용한 소상공인 라이브커머스 지원도 전국 최초로 시작했다. 진흥원은 센터에 항공사 CS 교육 8년 경력과 홈쇼핑 콜센터 근무 경력이 있는 전문상담원을 채용해 3개월 만에 소상공인 3000여 건의 전화 상담을 했다.
송경창 경북경제진흥원장은 “정부나 지자체 사업을 하다 보면 긴급한 틈새 지원이 꼭 필요한 기업이 많다”며 “예산 규모는 작지만 적절한 시기에 지원해주면 기업의 고성장도 이뤄내고 기존 정부 정책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