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엔·달러 환율이 하락하자 ‘슈퍼엔저’ 시대가 이제 막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엔화 강세와 달리 여전히 1380~1390원 사이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전환(피벗) 속도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29일 오후 4시께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0.7엔(0.38%) 하락한 153.45엔에 거래됐다. 1980년대 중반 일본 거품(버블) 경제 시기 이후 가장 높던 지난 10일(161.7엔)과 비교하면 약 20일 만에 8엔 넘게 하락했다. 이런 엔화 강세는 상대적으로 약세 영역에 있는 원화와는 다른 움직임이다. 외환시장에서 이날 오후 3시30분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01원70전으로 지난 10일(856원19전) 대비 45원51전(5.3%) 올랐다.
엔화가 이달 들어 강세로 돌아선 건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됐다. 가장 큰 요인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재선 가능성이 점쳐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엔화 약세 비판’ 발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6일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인터뷰에서 엔화와 위안화 약세를 강하게 비판한 직후 엔·달러 환율이 156엔대로 떨어졌다.
사실상 일본 차기 총리를 선출하는 9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금리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은행이 30∼31일 개최하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앞두고 일본 정치인들이 사실상 금리 인상을 요구하는 발언을 잇달아 한 것을 환율 변동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원화가 엔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배경으로 위안화 약세를 거론하는 전문가도 많다. 25일 중국 인민은행이 단기 정책 금리인 1년 만기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를 연 2.5%에서 연 2.3%로 인하한 후 위안화 가치는 이날까지 2거래일 연속으로 하락했다. 이날 상하이 외환시장(역내시장)에서 거래된 달러당 위안화 환율(7.2537위안)은 올 들어 2.1% 오른 수준이다. 위안화 환율은 지난해 5월 7위안대로 올라선 이후 다시 6위안대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 가치는 2000년대 들어 위안화 가치에 주로 연동돼 왔고 올해도 그런 경향이 확인된다”며 “최근 엔화 강세에는 미·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차별화와 선거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