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산업에서 상선 분야는 세계 1위의 높은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함정(군사용 배) 분야는 그렇지 못하다. 현재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이 글로벌 함정 수출시장을 선도(1~9위)하고 있다.
최근 국내 조선업체들이 좁은 국내 함정 시장을 벗어나 함정 수출 및 유지·보수·정비(MRO) 관련 글로벌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그동안 한국 해군의 전력 증강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수상함(전투함 호위함 군수지원함 경비함 다목적함 등)과 잠수함 건조를 오랜 기간 수행했기 때문에 함정 건조 및 MRO 관련 역량이 충분하다. 따라서 이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정부가 적절한 지원책만 제시한다면 서유럽 조선업체를 이른 시일 안에 따라잡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아래의 두 가지 지원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함정 건조와 관련해 숙련된 기술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보호해 나가야 한다. 숙련된 기술 인력의 부족은 함정 건조 속도와 유지·보수·정비 능력 저하를 초래한다. 연구개발(R&D) 및 장비 조달 비용을 상승시키고, 구식 장비 퇴역이나 장비 구매를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정부가 함정산업에 특화한 기술 전문 인력을 육성하려면 조선학과가 설치된 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함정 분야 조선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수립·실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 방위사업청에서 추진하는 대학 계약학과의 경우 우주·항공, 무인, 로봇,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요구하는 석·박사급 고급 인력을 확보하는 데 치중하고 있는데, 이를 조선 기술 분야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함정 건조 시 필요한 현장 작업인력, 특히 전체 현장 인력의 16%에 달하는 외국 인력의 숙련도를 높이고 장기 근무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갖춰나가야 한다.
둘째, 원활한 함정 수출을 위한 조치의 하나로 국내 민간 전문기관(한국선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함정 수출 시 수입국에서는 함정 품질 보증 및 안정성·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 수준의 ‘함정규칙’을 적용하고 민간 전문기관(선급)의 인증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 해군은 2000년도부터 함정의 설계·건조 및 운용 유지 단계에서 자국 선급이 보유한 함정규칙을 적용하고 있고, 함정 검사에 자국 선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수출 함정 검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국이 영국, 노르웨이, 뉴질랜드에 수출한 군수지원함, 그리고 필리핀에 수출한 호위함은 설계 도면 승인과 건조 검사를 영국선급(LR)이 수행했다. 그런데 외국 선급이 국내 건조 함정을 검사하면 검사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함정 건조 기술 및 관련 자료들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선진국처럼 자국 선급(한국선급)이 독립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비밀엄수 책임을 지고 검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이른 시일 안에 관련 법령 및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해양 위협과 분쟁이 증대하고 있고, 각국의 노후한 함정 교체 및 현대화 수요가 계속 커지고 있다. 이를 기회로 삼아 국내 함정산업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는 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마련해 함정 수출 경쟁력을 높여 나가면 상선 분야만큼 국내 함정산업 분야도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