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민의 HR이노베이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명암

입력 2024-07-28 17:26
수정 2024-07-29 00:30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9년 7월부터 시행돼 이제 5년을 넘겼다. 이 법은 수평적인 조직문화 구축에 도움이 되지만, 부작용도 있다. 신고 건수가 매년 꾸준히 늘어나면서 무분별한 신고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생겼다. 불만스러운 리더에게 복수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도 있다. ‘을질’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조직에서 리더가 구성원에게 업무 개선을 위해 부정적인 피드백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괜히 싫은 소리를 해서 나중에 본인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어려운 대화 자체를 회피하는 리더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려운 대화 회피는 리더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리더의 질책과 피드백에는 두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첫째, 리더가 진정성을 가지고 구성원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구성원들이 리더의 진정성을 느끼고 있다면 강한 질책이나 부정적인 피드백에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겠다’는 동기 부여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둘째, ‘선택의 원’을 키워나가야 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성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극과 반응 사이를 통제하는 선택의 원이 상당히 클 것이다. 리더들은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수많은 자극에 직면한다. 지시한 일의 결과물이 기대한 방향과 다를 경우 화가 치밀어 올라서 바로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내는 리더들이 아직도 많다. 특히 공개적으로 강하게 질책하면 당사자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유형 중에 아마도 가장 흔할 것이다. 구성원들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반드시 부드러울 필요는 없다. 강한 질책이 구성원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가치 판단’을 한 뒤 반응하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잘 만든 법이라도 모든 상황을 무 자르듯 명확하게 판단 내리긴 힘들다. 인간은 누구나 상식(common sense)이라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한밤중에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만난다면 대부분은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게 상식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들도 상식의 잣대로 들여다보면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할 수 있다.

괴롭힘 신고가 들어와 조사하기 시작하면 조직 분위기가 침체할 수밖에 없다. 이를 회복하기까지는 너무도 많은 기회비용이 든다. 가해자 징계로만 끝내지 말고, 조직이 빠르게 정상화할 수 있는 다양한 후속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회사나 구성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이 있다. 신고가 두려워 필요한 피드백을 회피하는 행위는 조직의 건강과 구성원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승민 LG화학 인재육성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