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위메프의 미정산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큐텐그룹의 자금력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티몬과 위메프는 수년째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데다 모기업인 큐텐의 결손금도 수천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티몬·위메프에 신뢰를 잃은 소비자와 판매자의 줄이탈로 기업 생존마저 불투명해진 탓에 외부 자금수혈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해법을 내놓아야 할 ‘키맨’인 구영배 큐텐 회장은 미정산 사태 나흘이 지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최악엔 티몬·위메프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나 파산을 신청하면 중소 판매자들이 정산금을 거의 돌려받을 수 없게 돼 연쇄 부도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모기업·FI 지원도 가능성 낮아
26일 금융당국과 유통업계에 따르면 티몬·위메프가 당장 해결해야 할 대금은 소비자 환불금과 판매자(셀러) 정산금으로 나뉜다. 이 중 티몬·위메프는 가용 현금으로 소비자 환불을 우선 진행한 뒤 3000억원대에 달하는 판매자 정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들 플랫폼이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권도완 티몬 운영사업본부장이 이날 새벽 환불에 나서면서 유보금으로 마련했다고 밝힌 자금 규모가 30억∼40억원에 불과하다. 위메프도 지난해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71억원)과 매출 채권 및 기타 채권액(245억원)을 합쳐 가용 현금이 316억원 남짓이다.
모기업인 큐텐의 자금 사정도 빠듯하다. 싱가포르기업청에 따르면 2021년 말 큐텐의 누적 결손금과 유동부채는 각각 4310억원, 5168억원에 달했다. 올 2월 큐텐이 북미·유럽 기반 쇼핑몰 위시를 2300억원을 주고 인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무상태는 더 나빠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큐텐은 위시 인수에 티몬·위메프 자금을 끌어다 쓴 것으로도 의심받고 있다. 티몬·위메프는 상품 판매와 결제·환불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사실상 ‘영업중단’ 상태다. 자금 회전이 멈추면서 상품 판매를 통해 정산금을 돌려막는 구조는 붕괴했다.
기존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자본 확충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티몬의 2대주주인 몬스터홀딩스는 미국계 사모펀드(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공동 출자해 세웠는데, 이들은 “추가 투자는 무리”라는 반응이다. PEF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이 보유한 11번가조차 ‘5년 이내에 상장(IPO)한다’는 투자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서 보듯 온라인 쇼핑몰은 사업성이 크게 떨어졌다”며 “PEF 사이에서 투자 요주의 업종으로 분류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기업회생도 쉽지 않을 듯”업계에선 티몬·위메프가 자금난에 몰린 기업의 ‘마지막 선택’인 기업회생절차를 밟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중소 판매자들은 판매대금을 당분간 돌려받을 수 없다. 금융 채권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상거래 채권까지 모두 동결되기 때문이다. 전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 티몬 신사옥 사무실에선 ‘정상화 어려움 판단’ ‘기업회생 고려’라고 적힌 직원 메모가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법정관리가 성사되려면 채권단 3분의 2, 담보권자 4분의 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 법정관리 전문 변호사는 “법정관리는 부채 부담만 덜어주면 기업이 영업해 돈을 갚을 가능성이 있을 때 가능한 절차”라며 “신뢰를 잃은 플랫폼 사업자의 법정관리에 동의해줄 채권자가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구 회장이 사재를 털지 않는 한 티몬·위메프의 선택은 파산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 회사가 파산 신청을 하면 피해자 보상은 더욱 어려워진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티몬과 위메프에 자산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아서다. 그나마 정산금을 받지 못한 판매자가 선순위 채권자일 가능성이 높아 일반 소비자들은 다른 피해 구제 절차를 통해 환불받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선아/정영효/최한종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