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떨어지기 일보 직전"…용산도 티메프 직격탄에 '비명' [현장+]

입력 2024-07-27 15:16
수정 2024-07-29 09:13

"피해 금액이 꽤 큰 업체 대표는 오늘 출근을 안 했더라고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서울 용산 전자상가 내 선인상가에서 컴퓨터 모니터 제품을 취급하고 있는 40대 업주 A씨는 지난 26일 "영업 공간을 두세 개 이상 사용하는 규모 있는 업체는 억대로 대금이 밀려있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 업체도 500만원 정도 대금이 지연됐다"며 "5월 판매 대금이 7월에 정산되는 방식이라 그 정도고, 6월 판매분까지 합치면 피해 금액은 그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티메프'(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 가운데 가전제품의 메카인 용산 전자상가도 직격탄을 맞았다. 상권 침체에 따라 e커머스 판매를 병행한 업주들은 막심한 피해 상황에도 당장 영업을 위해 이를 쉬쉬하고 있는 모양새다. "수억 원 대금 밀린 곳도"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싱가포르 전자상거래 업체 '큐텐' 자회사인 티몬과 위메프의 미정산액은 1600억~17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통상 판매 두 달 후 정산이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해 6, 7월 판매대금까지 합칠 경우 정산액은 훨씬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금 지연 사태가 점차 가시화되면서 두 플랫폼에 입점한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들의 줄도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이들 업체를 통해 가전제품을 판매해온 용산 전자상가 상인들은 거래 대금이 큰 제품 특성상 피해 금액도 더 큰 상황이다.

선인상가에서 20여년 가까이 컴퓨터 메모리 저장장치(SSD)를 판매해 온 B씨는 "컴퓨터 부품 중에서도 그래픽 카드처럼 가격이 비싸거나 노트북을 판매해 온 업체들의 피해 규모가 유독 큰 상황"이라며 "주변 상황만 봐도 피해 금액이 억대다. 지인인 대만산 컴퓨터 총판 업체 사장은 20억원 대금이 밀렸다고 하소연하더라"라고 전했다.


전자 상거래 활성화에 따라 정확한 가격이 공개되고, 오프라인 매장에 손님 발길이 끊기자 용산 전자상가 상권은 지속적으로 침체해왔다. 이에 업자들은 e커머스로 적극적으로 진출하며 생존을 모색했다.

B씨는 "대형 대리점들이 코로나19 당시 e커머스로 큰돈을 벌면서 아예 중간 딜러에게 내줄 제품마저 인터넷 상거래 업체를 통해 팔았다. 결국 이번에 티몬, 위메프처럼 플랫폼이 흔들리니 바로 직격탄을 맞은 셈"이라며 "상가 분위기는 폭탄 떨어지기 직전"이라고 말했다.

실제 큰 규모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대리점이나 총판 업체들은 피해 상황을 쉬쉬하고 있다. 계속 거래를 이어가야 하는 기존 오프라인 거래처들에 자금 사정을 밝히기가 어려워서다. 이날 직접 돌아본 선인상가 업체들 대부분이 피해 규모를 묻는 질문에 말을 아꼈다. 한 업자는 "그런 걸 어떻게 말해주냐"고 따져 물으며 기자를 쫓아내기도 했다.

용산 전자랜드 내 한 대형 컴퓨터 판매업체 관계자는 "규모가 큰 업체들은 이번 사태와 별개로 오프라인으로 제품을 공급해 온 수십 군데 중간 판매 업체들과 거래를 지속해야 한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자금에 문제가 생긴 걸 거래처에 공개하면 영업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산 지연 사태로 인해 e커머스를 주력으로 하지 않은 기업 간 거래(B2B) 업체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들 업체를 통해 물건을 받아 인터넷으로 판매한 업체가 구입 대금을 제대로 주지 못할 것이 우려돼서다.

주로 e커머스 판매자들에게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를 공급해온 한 업체 관계자는 "주에 두 번씩 딜러들로부터 대금을 정산받고 있는데 벌써부터 지연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한 2주 뒤부턴 본격적인 대금 지연이 발생할 것으로 보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도를 통한 온라인 중개 거래 방식의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초기 전자 상거래와 달리 판매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소위 '중개몰'은 사고가 났을 때 책임 소재를 따지기가 어렵다"며 "법제화를 통해 중개 플랫폼의 책임 범위, 정산주기에 따른 현금 보유 기간 등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정산 지연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