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이라도 빨리 집에 가야죠"…25억 '이재명표' 라운지 '텅텅' [혈세 누수 탐지기③]

입력 2024-07-26 13:07
수정 2024-07-26 13:36
"이 자리에서 매일 15~30분가량 버스를 기다려요. '경기버스라운지' 간판이 떡하니 보이니까 모를 순 없죠. 근데 써본 적은 없어요. 1분이라도 집에 빨리 가는 게 좋으니까요."
22일 월요일 오후 6시께 사당역 4번 출구 정류장 앞. 수원으로 향하는 40대 정모씨는 바로 옆 빌딩 3·4층 경기버스라운지를 바라보며 "버스 배차 간격이 5~10분으로 짧고, 이 시간엔 줄이 무척 길어 라운지를 오르내리는 게 의미 없다"며 이같이 지적했습니다.

서울에 오가는 경기도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20년 10월 문을 연 후 총 25억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된 경기버스라운지를 향한 시민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습니다. 이날 퇴근길 시민들은 찌는 듯한 더위와 습기에 연신 눈살을 찌푸리고 피로감을 호소했지만, 선뜻 경기버스라운지로 향하는 발걸음은 없었습니다. 이용률이 이렇게 저조한 끝에 경기도는 경기버스라운지를 곧 운영 종료하기로 했습니다. 혈세 누수 탐지기(혈누탐)팀이 현장을 찾아 왜 경기버스라운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지 실태를 파악해봤습니다. 알아도 사용 어려운 '계륵'
이곳은 평일 기준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주말엔 오후 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합니다. 동절기에는 11시까지 연장 운영합니다. 오전에는 3층만 운영하고, 오후 2시부터 7시까지는 3·4층을 모두 개방합니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깔끔한 인테리어와 편안한 의자가 카페를 연상케 합니다. '이런 공간을 무료로 쓸 수 있다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했습니다. 버스 도착 현황판은 물론 48석의 좌석과 테이블, 화장실, 냉·난방기 및 우산 대여, 공기청정기, 수유실, 와이파이, 전자기기 충전기, 정수기, 신발 건조기 등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관계자는 "이용하시는 분들의 만족도는 높다"고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이용률은 초라해 보였습니다. 오전 2시간은 사실상 비어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는 시민 5명만 이곳을 이용했습니다. 오전 11시께 이곳을 찾은 50대 시민 양모 씨는 "올해 들어 라운지를 처음 알게 됐고 지금까지 서너번 이용했다"며 "평소 퇴근 시간대에는 줄을 서야 하니 쓰기가 어렵다. 그림의 떡이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시설이 놀고 있는 게 아깝다"면서 "차라리 두 층을 운영할 돈으로 1층에 조그맣게 운영하면 안 되냐. 어르신분들은 올라오시기 힘들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사당역에서 경기도로 향하는 버스 노선은 28개 남짓입니다. 혈누탐팀이 경기 버스 예약 애플리케이션(앱) '미리'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예약제로 운영되는 노선은 10개였으며, 이조차 8개 노선은 오전 출근 시간대에만 예약이 가능했습니다. 시민들의 지적대로, 퇴근 시간에는 대부분의 노선이 야외에서 줄을 서야만 버스에 탑승할 수 있어 라운지를 이용하기 힘든 구조인 것입니다.

점심 이후부터 오후 4시께에는 시민들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라운지를 이용하다가, 다시 퇴근 시간대가 되면 한산해집니다. 오후에 이용하는 시민도 버스를 기다린다기 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라운지를 방문했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용자의 30~40%가량이 20대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20대 대학생 홍모씨는 "경기도민인데 서울에 사는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며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내년 4월 종료"
이곳은 2020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경기도지사를 지낼 때 만들어진 곳입니다. 당시 이 지사는 당시 직접 방문하며 애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21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전형적인 공무원들 탁상행정의 결과'라는 비판이 올라온 후에는 꾸준히 '혈세 낭비' 논란이 제기돼왔습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경기지사 후보로 나설 때 경기버스라운지를 찾아 "'남의 돈'처럼 막 쓰는 세금은 안 된다"는 취지로 공격해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지사 측은 "도민의 교통복지라는 취지는 외면한 채, 원색적 비난으로는 더 나은 대안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논란이 일면 홍보도 됐을 텐데, 이용률은 줄곧 저조했습니다. 경기도에 따르면 경기버스라운지의 일평균 이용자 수는 2020년 30명→2021년 54명→2022년 94명→2023년 102.2명→2024년 상반기 108.5명으로 증가세긴 합니다. 그러나 경기버스라운지 앞 버스 정류장의 일평균 이용객이 1만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용률은 1%에 그친다는 게 도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지금까지 이곳에 투입된 혈세만 총 25억원이 넘는 점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성적입니다. 처음에 도입하는데 9억원, 이후 연간 4억2000만원가량의 임대료 등 유지비가 들었습니다. 그나마 올해 운영 예산은 3억8200만원으로 줄었는데, 이는 오전 시간대 3층 단독 운영·상주 관리자 교대 근무 등 시설의 탄력적 운영을 통해 예산을 아낀 것이라고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결국 경기도는 임대 계약이 만료되는 내년 4월 라운지 운영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도 관계자는 혈누탐팀에 "매년 이용률이 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적은 시민들이 이용해서 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1층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시민들의 요구를 전하자 "3·4층 모두 운영하는 것보다 1층의 임대료가 2배가량 높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시민 요구·출퇴근 성격 고려했어야"
전문가들은 "잠재적 이용자가 시설을 어떻게 쓸 것 인가에 대한 사전 조사와 이해가 부족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전에 시민들의 요구를 면밀히 조사하지 않아 세금만 낭비된 행정 사례"라며 "아이디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출퇴근'의 성격을 고민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집에 가기 바쁜데 그런 곳에 머물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경기버스라운지의 유효성 문제가 불거진 이후 당시 정치권에서는 '공간을 임대해 라운지를 만들 예산으로 스마트 정류장을 여러 개 만들 수 있다'는 대안도 나온 바 있습니다. 스마트 정류장이란 버스 정류장에 냉난방기와 온열 의자 등을 설치해 시민 편의성을 높인 시설물입니다.

경기도도 버스 승강장 시설 개선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전해왔습니다. 도 관계자는 "경기도는 스마트 정류장의 일환으로 버스 승강장 시설 개선 사업을 하고 있다"며 "경기버스라운지 한 곳에 들어가는 예산보다 적은 금액으로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물 설치를 확대하려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김영리/신현보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