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합병에 제동을 걸었다. 최근 두산로보틱스가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정정해 다시 제출하라고 명령을 내리면서다. 연초부터 정부가 강력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나온 조치다.
24일 금감원은 공시를 통해 두산로보틱스가 지난 15일 제출한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에 대한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이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서에서 "지난 15일 제출된 증권신고서를 심사한 결과 증권신고서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 중요사항을 거짓 기재하거나 기재하지 않은 경우, 중요사항을 불분명하게 표현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저해하거나 중대한 오해를 일으키게끔 한 경우에 해당됐다"고 설명했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122조에 따르면 이런 경우들이 발견될 경우 금감원은 해당 내용을 손봐 다시 제출하라고 회사에 요구할 수 있다. 기존 증권신고서는 정정 요구를 받은 날을 기준으로 효력을 잃는다.
앞서 최근 두산그룹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 간 인적분할·합병,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포괄적 주식교환 등을 통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완전자회사로 이전하는 사업 구조 개편을 발표했다.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와 안정적인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해온 두산밥캣의 자본거래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거의 1대 1로 동일하게 평가받았다는 점이 소액주주의 큰 반발을 일으켰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기존 두산에너빌리티 주식을 갖고 있는 소액주주가 주식 100주당 27만1000원의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를 선진화해 투자자 보호 기능을 두텁게 하자는 '밸류업'을 거스른다는 지적이 많았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관련 민간단체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최근 세미나를 열고 "매출만 봐도 183배 차이 나는 두 회사의 기업가치를 1대 1로 보는 합병을 가능케 하는 법이 세계 어느 나라에 또 있는지 의문"이라며 "증권신고서를 심사하는 금감원이 엄격한 정정 요청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