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데이터를 생산하고 축적한 것은 기원 3000년 전 파피루스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면서였다. 한 연구소의 추산에 따르면 파피루스 이후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인 2000년대 초까지 5000년간 생산된 데이터가 20엑사바이트 정도라고 한다. 1엑사가 100경이므로 2000경 바이트쯤 된다.
스마트폰 출시 이후 지난해까지 생산되고 사용된 전 세계 데이터 총량이 120제타바이트다. 1제타가 1000엑사이므로, 120제타바이트는 12만 엑사바이트다. 과거 5000년 동안 생산한 양의 6000배에 달하는 데이터가 2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120제타바이트는 2시간짜리 고화질 영화(약 2GB) 600억 개 용량이다.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 52억 명의 분당 구글링 횟수가 630만 번이라고 하니 이 정도 데이터는 사용되고 있을 법하다.
이런 데이터의 풍요를 낳은 원천이 바로 클라우드다. 이 기묘한 정보기술(IT) 덕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방대한 데이터 생산 및 저장·활용이 가능해졌다. 우리 삶의 사회적 토대를 인프라라고 한다. 클라우드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프라다. 일찍이 이 같은 공간적 확장성과 시간적 동시성을 이룬 인프라는 없었다.
지난 19일 마이크로소프트(MS)로 촉발된 ‘글로벌 IT 먹통’ 사태는 인류 최대 인프라의 붕괴 우려를 낳은 공포의 사건이다. MS 윈도 운영체계(OS)를 사용하는 모든 기기의 1%도 안 되는 기기만으로도 전 세계적으로 가시적인 항공·의료·통신 장애를 초래했다. 초연결 사회의 맹점에 대한 경각심과 더불어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과잉 의존도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클라우드로 인한 세상의 진화를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도 되고 있다.
클라우드 하면 저장 기능만 떠올리기 쉬운데 이는 클라우드 서비스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1위 클라우드 기업인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제공하는 기술은 200개가 넘는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안면인식·음성인식·통·번역, 자율주행, 나아가 인공위성 서비스까지 있다.
클라우드가 우리 삶을 얼마나 편하게 바꾸는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예가 AI 스마트 호텔이다. 모바일 앱으로 예약한 뒤 객실을 이용할 때는 AI 음성비서를 통해 조명 점멸, 냉난방 온도 조절을 하고 객실 용품을 주문하면 로봇이 배달해준다. 여기에만도 AI 음성인식, IoT, 3D 공간 매핑, 자율주행, 다국어 통·번역, 영상분석 보안 기술 등 다양한 첨단 IT가 투입된다. 시각장애인에게 주변 상황을 인식해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기기가 스마트 글라스다. 이미지 인식 뒤 이미지를 문자 태그로 바꾸고 이를 다시 텍스트-음성변환하는 기술 등이 어우러져야 한다.
클라우드의 요체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서버에 저장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빅데이터 분석과 AI 머신러닝을 통해 비즈니스 솔루션을 창출하는 데이터 처리 프로세스다. 또 하나는 AWS나 MS 애저 같은 클라우드 기업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결합하는 것이다. 스마트호텔과 스마트글라스는 모두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클라우드라는 말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기술의 특징을 절묘하게 잡아낸 용어다. 하늘에 펼쳐진 구름처럼 무한 연결성과 함께 기술 결합에 따라 무궁무진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무정형성과 탄력성이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IT 대란이 될 법했을 일이 Y2K라 불린 2000년 문제였다. 컴퓨터의 연도 표기 시스템상 2000년을 1900년으로 오인해 버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 세계가 떨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거론될 정도의 공포 분위기였다. 전 세계가 연중 프로젝트로 매달린 결과, 아무 일도 없었다. 예고된 악재는 악재가 아니라고 하듯이 말이다. 클라우드 전환의 대표적 성공 사례가 넷플릭스다. 자체 데이터센터로 스트리밍하다가 트래픽 과부하로 한바탕 난리를 겪은 게 계기였다.
이번 블랙아웃 사태도 넷플릭스처럼 예방주사가 될 수 있다. 클라우드 균열에 대한 효율적인 대비책을 찾으면서 클라우드 체계를 더 발전시켜야 한다. 세상을 바꿀 획기적 기술들이 그 안에 잔뜩 대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