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삼성전자와 대만 미디어텍이 ‘밀월’ 관계로 바뀌었다. 삼성전자가 오는 10월 출시 예정인 프리미엄 태블릿 PC에 미디어텍의 최첨단 AP를 넣기로 해서다. 미디어텍은 지난 16일 삼성전자 저전력 D램 신제품의 성능을 공식 인증해줬다.
두 회사가 협력자가 된 건 서로 주고받을 게 많아서다. AP를 주로 퀄컴에서 납품받는 삼성전자에 미디어텍은 퀄컴 납품 단가를 깎을 수 있는 좋은 카드다. 공장이 없는 설계 전문 기업 미디어텍은 삼성 파운드리의 잠재 고객이기도 하다. 미디어텍에 삼성전자는 AP 시장에서 놓쳐선 안 되는 대형 고객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은 두 회사가 앞으로도 실리 위주의 협업 관계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고가 태블릿에 디멘시티 첫 채택23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사업부는 이르면 10월 신형 태블릿 PC인 ‘갤럭시탭S10’ 시리즈를 출시한다. 태블릿 PC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으로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을 통합한 칩셋 AP는 미디어텍이 개발한 ‘디멘시티 9300 플러스(+)’가 적용된다.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모바일 제품에 미디어텍의 AP가 채택된 건 갤럭시탭S10이 처음이다.
그동안 삼성전자 MX사업부는 프리미엄 태블릿 PC에 미국 퀄컴의 ‘스냅드래곤’ AP를 주로 썼다. 예컨대 2022년 나온 갤럭시탭S8엔 스냅드래곤 8Gen1, 지난해 출시한 갤럭시탭S9에 스냅드래곤 8Gen2가 장착됐다.
탭S10에 스냅드래곤 AP 대신 디멘시티 9300+를 넣는 건 미디어텍의 기술력이 크게 좋아졌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과거 미디어텍은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중국 업체를 대상으로 중저가 AP ‘헬리오’ 시리즈를 납품하며 실력을 키웠다. 퀄컴을 제치고 AP 점유율 세계 1위(2024년 1분기 출하량 기준 39%)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이 중국 화웨이와 화웨이의 AP 설계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제재하면서부터다. 화웨이 제재 반사효과로 존재감을 키운 샤오미, 오포, 비보가 미디어텍의 프리미엄 AP 주문을 늘리면서 기술력과 노하우가 축적됐다.
삼성이 전격 채택한 디멘시티 9300+는 미디어텍의 설계 역량이 총집결된 제품으로 평가된다. 경쟁 AP인 스냅드래곤 8Gen3와 같은 TSMC의 4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에서 생산됐지만 최근 반도체 성능 평가 사이트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가격은 퀄컴 AP 대비 10% 이상 저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퀄컴 AP 단가 깎는 중요한 카드삼성전자의 미디어텍 AP 채택을 단순히 성능 때문으로만 볼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에 AP를 납품하는 퀄컴의 판매단가를 깎기 위한 포석이란 얘기가 나온다. 삼성의 스마트폰 원가에서 AP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12.8%에서 2023년 18.1%로 상승했다. 삼성이 자체 개발한 AP 엑시노스의 존재감이 약해지고, 스냅드래곤 장착 비율이 올라간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퀄컴 의존도가 높아지면 부품 단가 협상에서 퀄컴에 끌려가게 된다”며 “미디어텍은 퀄컴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카드”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입장에선 분기당 1억 개의 AP를 판매하는 미디어텍은 꼭 끌어들여야 할 잠재고객이다. 현재 미디어텍은 프리미엄 칩 생산을 주로 TSMC에 맡긴다. 스마트폰 반도체 시장에서 미디어텍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모바일 D램 신제품의 검증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두 회사의 접점을 넓히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