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훌쩍.'
지난 3월 14일 김민기 트리뷰트(헌정)가 진행된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찾은 관객들은 공연 중간 연신 눈물을 훔쳤다. '학전'에서의 마지막 공연. 당시 현장에는 손을 꼭 잡은 노부부부터 젊은 학생까지 몰려들었다. 객석을 꽉 채운 이들은 학전의 33년 여정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 학전을 이끌어 온 김민기가 우리 곁을 떠났다. 위암 투병 중이었던 고인은 증세가 악화하며 지난 21일 세상을 떠났다. 학전이 문을 닫을 당시 1억원 이상을 쾌척했던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은 "역경과 성장의 혼돈 시대, 대한민국에 음악을 통해 청년 정신을 심어줬던 김민기 선배에게 마음 깊이 존경을 표하며 명복을 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 시대를 노래하고 삶을 은유한 청년, '꿈'을 꾸게 하다
고(故) 김민기는 시대를 노래한 음유시인이었다. 1971년 20대 청년이었던 그는 '아침 이슬'이라는 곡을 내놨다. 많은 이들이 양희은의 히트곡으로 알고 있지만, 김민기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다. 김민기의 음악회에 갔던 양희은은 '아침 이슬'에 마음을 빼앗겼고, 공연이 끝난 뒤 바닥에 찢어져 있던 악보를 주워 집에서 연습했다. 이후 김민기를 찾아가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부탁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때는 군사정권 시절. '아침 이슬'을 시작으로 김민기는 민중가요 탄압으로 고초를 겪었다. 1973년 정부가 건전가요로 지정했던 이 곡은 1975년 돌연 금지곡이 됐다.
외압의 연속이었다. 데뷔 음반 '김민기'는 출반 직후 압수당했고, 1972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민중가요를 가르치다가 경찰에 연행됐으며, 1975년 카투사 복무 당시 유신 반대운동에서 김민기의 노래가 불렸다는 이유로 보안대 조사도 받았다. '아침 이슬'에 이어 '꽃 피우는 아이', '늙은 군인의 노래', '상록수'까지 줄줄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금지곡이 해제될 때까지 고인의 삶은 고달팠다. 고향인 전북 익산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기도 하고, 봉제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기도 했다. 금지곡이 해금된 건 1987년. 6·10 민주항쟁 당시 광장에 모인 군중들은 '아침 이슬'을 부르며 저항정신을 되새겼다.
김민기의 음악은 누군가에겐 위로가, 누군가에겐 희망이 됐다. 현실적인 내용, 서정적인 연주에 심장이 '쿡' 찔리는 느낌이 들다가도 곡에 깔린 깊은 은유는 이내 뭉클한 여운을 안긴다. '강변에서', '친구', '천리길', '가을 편지', '내나라 내겨레', '길', '철망 앞에서' 등 숱한 명곡을 남겼다. 시대를 노래하고 삶을 은유한 고인은 많은 이들을 꿈꾸게 했다. ◆ 진정한 예술가, '꿈의 밭'을 일구다
1991년 대학로에 '학전'을 개관하며 연극 연출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배울 학(學)에 밭 전(田). 학전은 이름이 지닌 뜻 그대로 오랜 시간 국내 공연예술인들의 못자리가 되어줬다. 지난 33년간 이곳에서 기획·제작한 작품은 총 359개. '학전의 독수리 5형제'로 불렸던 이들이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김윤석, 조승우였던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배우들이 학전을 배움터로 삼아 성장했는지 알 수 있다.
라이브 공연은 학전의 뿌리였고, 그 위에서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꽃을 피웠다.
학전이 개관할 당시는 서태지와 아이들 열풍이 불며 가요계가 격변을 겪던 때였다. 파격과 화려함에 매료되던 시절, 학전은 통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듣는 음악'의 가치를 지켰다. 고(故) 김광석을 비롯해 노영심, 안치환, 노래를 찾는 사람들, 동물원, 강산에, 여행스케치, 빛과 소금, 이소라, 윤도현, 유리상자 등이 공연하며 대학로에 라이브 콘서트 문화를 정착시켰다. 김광석이 1000회 공연을 한 곳도 바로 학전이었다.
1994년에는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무대에 올랐다. 한국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연주를 선보인 작품이었다. 이 밖에도 '모스키토', '의형제' 등의 뮤지컬이 탄생했다.
설경구는 학전에서 포스터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지하철 1호선'에 캐스팅되어 본격적인 배우 생활을 시작했고, 윤도현과 유리상자는 학전에서 첫 공연을 열었다. '월드 클래스' 재즈보컬 나윤선은 학전에서 데뷔했고, 영화 '기생충'의 음악감독 정재일은 이곳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던 경력이 있다. 공연예술의 산실로써의 역할에 충실해온 학전에서 많은 배우와 가수들이 초석을 다져 현재의 대중문화를 이끌고 있다. ◆ 더 큰 미래를 위해…'꿈의 지원군'이 되다
4000회 공연에 누적 관객 70만명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던 '지하철 1호선'은 2008년 돌연 중단됐다. "우리 모두의 미래는 어린이"라는 고인의 소신에 따라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연에 집중하면서다. 2004년 '우리는 친구다'를 시작으로 올해 초까지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등의 어린이 공연을 학전 무대에 올린 김민기였다.
어린이 공연은 수익성이 현저히 낮은 대표적인 장르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김민기는 '아침 이슬', '상록수' 등을 부른 음반 계약금으로 학전의 문을 열었고 저작권료를 쏟아부어 운영했지만, 만성적인 재정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어린이 공연을 놓지 않았던 그의 정신은 이제 어린이·청소년 중심 극장인 아르코꿈밭극장이 이어간다.
지난해 11월 고인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의 열악한 아동·청소년 문화풍토로 보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해왔다"며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에는 입시경쟁과 소모적인 오락만이 존재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숨통을 터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어두운 곳에 늘 빛을 비춰온 '아름다운 사람'. '노찾사' 권진원은 김민기 트리뷰트 무대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부르던 중 눈물을 쏟았던 바다. "김민기 선배님의 노래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이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분이었습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