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불확실성과 반도체 업종 고점 논란으로 증시가 혼돈에 빠진 가운데 조선·건설·기계 등 산업재 종목이 선전하고 있다. 조선 업종을 중심으로 실적 향상이 확실시되는 데다 우크라이나 재건 등 ‘트럼프 트레이딩’의 수혜까지 받는 모양새다. 증권가에선 2000년대 중국발 호황을 탄 ‘왕년의 산업재’ 종목들이 다시 떠오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수 하락에도 산업재 종목은 급등22일 코스피지수는 1.14% 하락한 2763.51에 마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선 레이스 포기와 반도체의 ‘피크 아웃’ 우려가 맞물리며 증시 불확실성이 커지는 양상이다. 국내 증시를 떠받치던 외국인들이 매도세로 돌아서면서 지난 15일부터 6거래일간 코스피지수는 3.3% 급락했다.
증시가 혼탁한 가운데 산업재 종목의 선전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날 반도체, 자동차, 2차전지 등 시가총액 상위주는 줄줄이 하락했지만 건설과 기계, 조선 등 산업재 종목이 일제히 올랐다. 건설·인프라 관련주인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가 각각 15.91%, 6.92% 올랐고, 건설 업종의 삼부토건도 13.33% 급등했다. 선박엔진을 제조하는 STX중공업은 8.89%, HD현대그룹의 조선업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은 7.18% 상승했다.
반도체 조정과 ‘트럼프 대세론’에 따른 순환매 흐름이 이들 산업재 종목을 밀어 올렸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러닝메이트인 JD 밴스 상원의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재건을 수행하는 건설 업종과 이를 위해 필요한 광물을 옮기는 선박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기대가 이들 업종에 반영됐다는 평가다. 증시 불확실성 속 꾸준히 실적을 낸다는 점도 투자심리가 쏠리는 이유다. 증권가에 따르면 지난해 2823억원이던 HD한국조선해양의 영업이익은 올해 1조958억원으로 껑충 뛸 전망이다. 침체 끝 반등…장기 호황 탈까한때 국내 증시를 이끈 조선·기계·건설 등 산업재 종목은 긴 시간 침체를 겪었다. 2000년대 후반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겪은 조선 업종은 2010년대 들어 해양플랜트 사업 부실화 등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며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올 들어 약 15년 만의 ‘슈퍼 사이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수주 목표를 7개월 만에 달성했고, 신조선가지수도 역대 최고치에 근접한 상황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조선사의 마진 회복을 믿지 않던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회복했다”며 “조선 업종이 다시 증시를 주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건설 업종 역시 2000년대 글로벌 정유·플랜트, 국내 주택 경기 호황을 타고 증시를 주도했지만 현재는 투자자 관심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금리 인하와 우크라이나 재건 테마 흐름을 타고 최근 매수세가 살아나고 있다. 금리 인하 정도에 따라 리스크 요인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도 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하와 수도권 아파트 가격, 트럼프 트레이딩이 장기간 주가가 정체된 건설주의 반등을 끌어냈다”며 “GS건설과 대우건설 등 건설주 투자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증권가 관계자들은 산업재 시장이 장기 호황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2000년대 중국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국내 산업재 시장의 부활을 이끌었지만, 이번엔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발 에너지 수요가 늘고 있어 산업재 업사이클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