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달 때까지 스물여덟 번의 도전이 필요했을 만큼 유독 메이저 대회와 인연이 없던 잰더 쇼플리(31·미국)가 단숨에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꿈꾸는 선수로 우뚝 섰다. 세계 4대 메이저 대회 중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제152회 디오픈 챔피언십에서 통산 두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다.
지난 5월 PGA 챔피언십에서 데뷔 7년 만에 메이저 우승의 한을 풀었던 쇼플리가 2개월 만에 또 메이저 대회를 제패했다. 쇼플리는 22일 영국 스코틀랜드 사우스에어셔의 로열트룬GC(파71)에서 끝난 대회에서 최종 합계 9언더파 275타로 우승했다. 이날 최종 4라운드에서 6언더파 65타를 친 그는 공동 2위(7언더파 277타)인 저스틴 로즈(잉글랜드)와 빌리 호셜(미국)을 2타 차로 제치고 통산 9승을 기록했다.
시즌 2승을 모두 메이저 우승으로 장식한 쇼플리는 2018년 브룩스 켑카(미국)가 US 오픈과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후 6년 만에 한 시즌 메이저 대회에서 2승을 달성한 선수로 기록됐다. 그는 “한 해 두 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꿈이 현실이 됐다”며 “메이저 첫 승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2승을 하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고 기뻐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 한발짝 더쇼플리에게는 한때 ‘준우승 전문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우승 경쟁을 벌이다가 결정적 순간 실수 하나로 무너져 우승을 놓치거나 역전패를 당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가 PGA 챔피언십 우승 전까지 메이저 대회에 27번 출전해 12번이나 톱10에 입상하고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것도 ‘뒷심 부족’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랬던 쇼플리가 2개월 전 첫 메이저 챔피언에 오른 뒤 ‘우승 전문가’로 다시 태어났다. 1타 차 공동 2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그는 88.9%의 높은 그린 적중률을 앞세워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뽑아내는 집중력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우승상금 310만달러(약 43억원)의 주인공이 된 쇼플리는 “첫 메이저 우승이 후반 9홀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약간의 평온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 시즌에 두 개 메이저 대회를 휩쓴 쇼플리는 이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꿈꾼다. 남은 메이저 대회는 마스터스와 US 오픈이다. 쇼플리는 “그랜드슬램은 메이저 대회를 우승하기 전부터 원하던 것”이라며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지만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고 했다. 골프 역사에서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한 선수는 진 사라젠과 벤 호건(이상 미국), 게리 플레이어(남아프리카공화국),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이상 미국) 등 5명뿐이다. 아버지에게 금메달 또 걸어줄까2020 도쿄올림픽 남자골프 금메달리스트인 쇼플리는 이번 우승으로 다음달 1일 시작하는 2024 파리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쇼플리는 3년 전 도쿄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준 것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쇼플리의 아버지 슈테판은 젊은 시절 독일 육상 10종 경기 국가대표였지만 교통사고로 한쪽 눈 시력을 잃어 올림픽의 꿈을 접었다.
이 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 중에는 임성재(26)가 공동 7위(1언더파)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안병훈(33)은 공동 13위(1오버파)로 대회를 마쳤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