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 활용 못해…기상청 예보 정확도 70% 밑돌아

입력 2024-07-21 17:58
수정 2024-07-29 16:34

국내 한 대형 아울렛의 지난 토요일 방문객이 예년과 비교해 2~3%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비가 올 것으로 예보된 오전 시간대 방문객은 10%가량 감소했다. 폭우 피해를 우려해 시민들이 외출을 미룬 탓이다. 에버랜드 등 놀이공원도 폭우 예보로 방문자가 줄었다. 놀이공원 관계자는 “이달 들어 비가 많이 내릴 것이란 예보가 늘면서 주말에도 평일 수준의 방문객이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여름 폭우로 인한 피해가 늘어가는 가운데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번번이 빗나가며 산업 현장 곳곳에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차를 줄이기 위한 데이터 수집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빗나간 예보로 산업현장 타격
21일 업계에 따르면 경기 이천의 한 캠핑장 운영자 A씨는 주말 예약자들의 취소 요구를 모두 들어줬다. 사전에 취소가 안 된다고 공지했지만, 기상청이 산사태 우려 등을 경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일엔 큰비가 내리지 않아 손해를 봤다. 반면 같은 날 오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열린 가수 싸이의 콘서트는 갑자기 쏟아진 비로 중단됐다.


경기지역 골프장들은 잘못된 기상 정보로 예약 취소 사태를 겪었다. 폭우가 올 것이란 예보로 30%가 넘는 예약이 취소돼서다. 하지만 이날 날씨는 종일 맑았고, 저녁이 돼서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골프장 관계자는 “날씨에 따라 매출이 심하게 출렁이는 만큼 좀 더 정확하게 예보를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날씨가 산업 현장과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지만 예보 정확도는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강수 맞힘률은 평균 69%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쉽게 말해 올 들어 열 번 중 세 번은 강수를 맞히지 못한 셈이다. 올해 월별 강수 맞힘률은 63~75%로 2018년 4월 최고치(83%)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다.

지난 20일 경기 안성은 오전에 시간당 10㎜의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됐지만 정작 당일엔 맑았다. 오전 9시께 비가 살짝 내리다가 곧바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예상 강우량도 번번이 틀렸다. 8일 경북 지역은 누적 강수량 200㎜를 기록했다. 전날 최대 100㎜가 내린다던 예보보다 두 배 이상의 비가 쏟아졌다. 기상청 “기후 변화로 예측 어려워져”
기상청은 기후 변화로 인한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 여름철 날씨 예측 난도가 높아졌다는 입장이다. 올해 장마는 ‘도깨비 장마’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오락가락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빈번한 ‘스콜성’ 폭우도 한반도가 아열대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비구름이 남북으로 좁고 동서로 길게 형성되는 식으로 일반적 수준을 벗어나는 국지성 호우가 자주 발생해 예측이 어렵다”며 “하루 이틀 전에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전보다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슈퍼컴퓨터까지 도입하고도 예보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기상청은 2021년 예산 628억원을 들여 슈퍼컴퓨터 5호기를 마련했다. 컴퓨터 크기가 건물 3층 규모로 전력 요금만 한 해 50억원이 들어간다. 당시 기상청은 전반적인 기상 모델 수행 능력이 기존 4호기보다 9.6배가량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슈퍼컴퓨터의 수행 능력이 향상되면서 전보다 높은 예측 자료를 낼 것이란 기대가 높았지만, 실제 예보 수준은 전보다 못한 상태가 됐다.

전문가들은 변화하는 기후와 우리 환경에 맞는 기후 예측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유럽은 수십 년간 독자적 수치 모델을 이용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오차를 줄이기 위한 연구를 계속해왔다. 반면 한국은 영국기상청통합모델(UM)을 이용하다가 2020년에서야 한국형수치예보모델(KIM)이라는 독자적인 수치 모델을 구축했다.

한국기상학회 관계자는 “슈퍼컴퓨터는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예보관이 날씨를 예측한다”며 “슈퍼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철오/라현진/조수영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