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회담 취재차 금강산에 갔을 때다. 일정을 마치고 배를 타기 직전 안면을 튼 북한 실무요원이 내 손을 잡고 면세점에 데려가더니 술·담배 등을 잔뜩 들고 “계산은 기자 동무가 하라”며 나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와 누구에게 주려느냐고 물으니 바쳐야 할 곳이 많다고 했다. 왜 ‘삥’ 뜯느냐고 항의하자 “알면서…”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당연히 낼 돈이 없다는 뜻이다.
북한은 배급제여서 임금 개념이 희박하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와 탈북자에 따르면 주민 대부분이 월급을 못 받고, 받더라도 북한 환율 기준 1달러에도 못 미친다. 배급제가 붕괴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한 탈북자는 “오히려 직장에 자기 돈을 갖다 바쳐야 한다”고 폭로했다. 배급이 끊어지자 장마당이 형성됐고, 여기에서 번 돈을 뇌물로 바치는 사슬이 구조화했다. ‘안전원은 안전하게 먹고, 당 간부는 당당하게 먹고, 보위부는 보이지 않게 먹고’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통일부의 탈북자 조사에 따르면 뇌물 공여 경험은 2016~2020년 54.4%에 달했다. 이산가족 상봉 때 북한 주민이 남쪽 가족으로부터 받은 달러와 선물도 상납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 영상, 노래 등을 단속하는 북한 관리들은 이를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온 사회가 뇌물로 작동하면서 뇌물이 사업비로 불린다.
지난해 11월 한국으로 망명한 이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는 외무성 관리들을 ‘넥타이를 맨 꽃제비(거지)’라고 자조했다. 외무성 근무 때 그의 월급은 0.3달러에 불과했다. 세계은행이 정한 생존에 필요한 최저 수준인 하루 1.9달러와 비교 자체가 민망하다. 이 전 참사는 쿠바에서 근무할 때 한 달에 500달러(약 69만원)를 받았다. 이 정도로는 해외 생활이 어려운데 더 힘들게 한 것은 ‘끔찍하게 많은’ 뇌물 요구였고, 이게 한국에 온 한 이유였다고 했다. 북한의 엘리트 세계가 이 정도라면 그 아래 민생은 말할 것도 없다. 북한처럼 헐벗은 체제에 도덕과 윤리를 언급하는 것은 애초 무리일 것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