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괜찮은 대학에 입학할 것, 중퇴할 것, 차고에서 창업할 것’ 등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세계적 테크기업을 일군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는 거다. 농담이지만 창의성과 절박함이 창업의 기본이라는 의미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빌 게이츠(하버드대), 애플을 만든 스티브 잡스(리드대), 메타(옛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하버드대), 오라클 설립자인 래리 앨리슨(시카고대), 우버 창업자인 트래비스 캘러닉(UCLA) 등이 명문대에 입학했다가 그만뒀다. 한창 몸값이 뛰고 있는 오픈AI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도 스탠퍼드대를 중퇴했다.
대학 중퇴를 부추기는 장학금도 있다. 페이팔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이 만든 ‘틸 장학금’이 그것이다. 장학금을 받는 조건은 대학 중퇴 후 창업이다. 창업자금으로 1인당 10만 달러를 준다. 2010년부터 300여 명에게 창업자금을 대주었다. 이더리움 창업자 비탈릭 부테린(워털루대 중퇴)과 자율주행차의 센서 및 라이다를 만드는 루미나테크놀로지를 창업해 세계 최연소(25세) 억만장자가 된 오스틴 러셀(스탠퍼드대 중퇴)이 이 장학금으로 창업했다.
차고 창업(garage startups) 사례도 수두룩하다. 실리콘밸리 1호 기업인 HP는 1939년 팰로앨토 에디슨가에 있는 허름한 차고에서 출발했다.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구글, 애플, 아마존이 창업한 곳도 실리콘밸리 주택의 차고였다.
물론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차고가 없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대학을 그만두고 창업하려 해도 누가 돈을 대주지 않는다. 실패를 용인하는 것도 아니다. 한 번 실패하면 영원한 실패자로 낙인찍힌다.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고 있어도 방심했다간 대기업에 뺐기고 만다. 피터 틸이 ‘제로 투 원’에서 강조한 ‘창조적 독점’은 우리나라에선 아직 꿈이다.
하지만 명문대 중퇴는 늘어나는 추세다. 이른바 SKY대(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중심으로 그렇다. 동기는 확연히 다르다. 창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른바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에 가기 위해서다.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이 늘어나 중퇴자는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 의사만 되면 고액의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대부분 의대에 간다고 보면 된다(물론 이렇게 모인 전공의들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며 벌써 6개월째 실력행사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통계가 나왔다. 일반직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생’이 줄었다고 한다. 지난 5월 기준 일반 기업체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은 전체의 29.7%로 공시생(23.2%)을 앞질렀다. 공무원 준비가 2위로 밀려난 것은 통계청이 2006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이다. 안정적이긴 하지만 급여가 적고 역동성도 떨어지는 공무원 생활이 재미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까닭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기업체 취업이 쉬운 건 물론 아니다. 취준생들이 첫 직장을 얻기까지 평균 11.5개월 걸렸다. 전년보다 1.1개월 늘었다. 취업도 힘든 마당에 웬 창업타령이냐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해진(네이버), 김범수(카카오), 김택진(엔씨소프트), 방시혁(하이브), 김봉진(우아한형제들) 등 국내에서 성공한 창업자들은 대학을 나와 멀쩡한 직장에 다니다 창업했다. 먹거리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나라에서 환자를 나 몰라라 하는 의사들보다 기업체 취업을 꿈꾸는 취준생들의 가능성이 더 무궁무진하다. 그들을 응원한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