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뒤면 흰우유만 생산하는 회사는 모두 망할 겁니다.”
1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제주하계포럼이 열린 제주 신라호텔. 청바지에 남색 재킷 차림의 김선희 매일유업 부회장이 강단에 올랐다. “매일유업은 매일이 사투입니다.” 대한상의 소속의 내로라하는 중견·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눈길이 일순 그에게 쏠렸다.
김 부회장은 다소 긴장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흰우유 업체인 매일유업이 생존을 위해 어떻게 혁신하고 있는지 담담하게 설명했다. “20년 전쯤 호주 덴마크 같은 선진 낙농국가에서 수입하는 우유에 관세를 100% 매겼습니다. 관세율은 매년 줄어서 1~2년 뒤면 ‘제로(0)’가 됩니다. 흰우유만 만드는 회사는 도저히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그사이 수입 우유 가격은 크게 낮아진 데 비해 국산 우윳값은 두 배가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매일유업 역시 ‘정해진 운명’ 앞에 놓였었다. 김 부회장은 대표로 취임한 2014년, 노조위원장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흰우유 비중이 전체 매출의 75% 이상이면 무조건 죽는 길 외엔 없습니다.”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인 그가 식품공학과 박사가 즐비한 조직의 대표로 취임하자마자 암울한 소리만 했으니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김 부회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매일이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생존 앞에서 우아한 조직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회사 복도에서 고성이 오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중국에서의 꿈이 좌절됐던 때”를 꼽았다. 2017년까지 연간 5000만달러어치를 팔았던 공장이 거의 멈춰선 적도 있다. “갑자기 중국 정부에서 감사를 나오겠다는 겁니다. 국산(중국산) 우유 제품을 키우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중국 수출용 분유 공장과 그곳에 있던 연구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매일유업이 택한 건 프로틴이었다. 저출산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내수 중심 유가공업체로서 지속 가능한 새 사업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 급선무였다. 김 부회장은 “선진국에서는 근육감소증이 보험 처리까지 된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개발에 들어갔다”며 “지금은 우유 외에 다른 제품을 늘리면서 매출 5000만달러 수준을 가까스로 회복했다”고 말했다. 프로틴 외에 매일유업은 아몬드, 귀리 등으로 영역을 넓혀 흰우유 매출 비중을 60% 밑으로 떨어뜨렸다. 매일유업은 지난해 매출 1조7830억원, 영업이익 722억원을 냈다. 전년 대비 매출은 5.8%, 영업이익은 19% 늘었다.
김 부회장은 강연 말미에 작심한 듯 정부를 향한 ‘하소연’도 덧붙였다. 그는 “덴마크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우유가 국내 시판 우유보다 훨씬 싸다”며 “시장경제를 얘기하면서 구조개혁 없이 기업에 가격을 올리지 말라는 식의 일방통행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귀포=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