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은 글로벌 에너지기업에 불고 있는 인수합병(M&A)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엑슨모빌과 셰브런 등 에너지 공룡들은 ‘넷제로’(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친환경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M&A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작년 10월 이후에만 10조원 이상 M&A가 5건이나 성사됐을 정도다.
SK그룹이 두 회사를 합친 것 역시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인 석유와 가스 사업에서 쌓은 탄탄한 체력을 바탕으로 배터리와 수소, 암모니아 등 친환경 사업에 뛰어들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전통 산업인 석유, 가스에 미래 산업인 수소와 암모니아, 2차전지까지 포트폴리오로 갖춘 회사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2030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이 20조원을 넘는 글로벌 톱 에너지기업에 오르겠다”고 말했다. ○“다양한 시너지 날 것”SK그룹은 17일 SK이노베이션과 SK E&S가 합병해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재생에너지, 수소, 배터리 등을 아우르는 종합 에너지기업으로 변신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국내 1위 정유·석유화학 기업인 SK이노베이션은 이외에도 윤활유와 석유 개발 등의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SK E&S는 1999년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된 회사로 국내 1위 민간 LNG 사업 회사다.
SK그룹은 이번 합병으로 다양한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선 효율적인 인력 운용과 비용 절감이 가능해진다. 각자 벌이는 석유와 LNG 등 자원 탐사와 개발을 함께할 수 있는 데다 트레이딩 사업 등을 통합할 수 있어서다. 세계 곳곳에 있는 연료 저장 터미널 등을 공유해 비용을 줄이고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울산 등에 있는 SK이노베이션 공장에 SK E&S가 직도입한 LNG를 사용해 연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회사 측은 통합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만 EBITDA 기준 연 2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아낀 비용은 SK그룹의 미래 사업에 투자한다. 우선 2차전지 분야에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할 수 있다. SK온은 지난해 7조원에 이어 올해 약 7조5000억원을 설비투자에 쓴다. 업계에선 이르면 올 하반기 SK온이 추가 증자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부채가 23조4908억원에 달하는 SK온이 추가 투자하기 위해선 증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SK E&S는 3월 말 기준으로 3조2125억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SK E&S의 수소·전기차 충전 인프라와 재생에너지 등 신사업 분야에도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안정적인 수익구조사업 포트폴리오는 한층 더 다양해진다. 통합 SK이노베이션은 정유와 석유화학뿐만 아니라 △LNG △도시가스 △재생에너지 △배터리 △수소 △액침냉각 등의 사업군을 보유하게 된다. 여기에 미래 에너지 사업으로 통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소형모듈원전(SMR) 등에도 적극 뛰어들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재무적 체력도 탄탄해진다. 정유와 석유화학 중심인 SK이노베이션은 중국 등 외부 환경에 따라 영업이익이 들쭉날쭉했다. 이에 비해 국내 1위 민간 LNG 사업자인 SK E&S는 매년 1조~2조원에 달하는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 석유화학사업이 부진해도 내수 산업인 LNG와 도시가스 부문이 뒷받침해준다는 얘기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에너지산업을 둘러싼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합병한 것”이라며 “미래 에너지 산업을 선도하는 종합 에너지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추형욱 SK E&S 사장은 “수소 등 그린 사업을 강화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우섭/김형규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