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환시장 ‘큰손’인 국민연금공단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달러 선조달 확대를 추진한다. 지난달 국민연금이 한국은행에서 달러를 빌려오는 외환스와프 규모를 늘린 데 이어 달러가 조금이라도 저렴할 때 매수할 수 있는 선조달 한도를 상향하는 것이다. 고환율(강달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연금의 달러 조달 방식이 다변화하면서 외환시장 변동성이 축소되고 국민연금도 투자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선조달로 외환시장 영향 최소화16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해외자산 투자를 위해 국내 외환시장에서 사들인 달러는 올 상반기 평균 월 20억~30억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에서 선조달할 수 있는 한도는 2022년 9월 이후 월 10억달러로 묶여 있다. 당시 국민연금과 외환당국은 14년 만에 100억달러 규모의 외환스와프 계약을 부활시키고 선조달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는 갈수록 늘어나는 국민연금 해외 투자 규모에 비해 선조달 한도가 낮다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국민연금이 선조달로 확보하지 못한 나머지 투자자금을 외환시장에서 한꺼번에 사들여 원화 가치 하락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한은 외환보유액에서 달러를 조달하는 외환스와프도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의 지난 2분기 기준 외화 단기자금 규모는 하루 평균 잔액 기준 6억달러로, 한도치인 30억달러의 20%에 머물렀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외환스와프 한도를 증액했지만 한은도 외환보유액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한도를 다 채워 달러를 빌리기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선조달은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선조달이 가능하지 않았을 때는 국민연금이 저가 매수 기회가 온 해외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해당 시점의 환율이 얼마든 달러를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선조달 한도를 확대하면 달러가 쌀 때 분산 매수한 달러를 통해 실질 매수가를 낮추고 거래비용도 줄여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매물로 나온 부동산, 기업 지분 등 대체투자 자산에 투자하기 위한 운용사의 갑작스러운 ‘캐피털 콜’(투자금 납입 요구)에 대응하기도 수월해진다.
외환당국인 기획재정부는 당초 선조달 확대에 부정적이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이 환차익을 누리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선조달 필요성에 공감하는 기류로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선조달 한도는 국민연금의 달러 매수 규모 등을 감안해 검토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해외자산 공격 투자하는 국민연금급속도로 증가하는 해외 투자도 선조달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주식·채권·대체투자 등 해외자산에 투자한 규모는 2019년 256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12월 말 기준 534조원으로 277조2000억원 늘었다. 매년 해외자산 규모가 70조원 불어난 셈이다. 전체 운용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34.9%에서 51.6%로 커졌다. 정부는 2028년까지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비중을 약 60%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국민연금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해외자산 수익률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1988년부터 작년까지 해외주식 평균 수익률은 11.04%로 국내주식 수익률(6.53%)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지난해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기금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상승하면 기금 고갈 시점은 5년 뒤로 연기된다.
허세민/황정환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