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장관 "GPU·D램 수명 끝나간다…지능형 반도체가 AI시대 새 길"

입력 2024-07-16 17:50
수정 2024-07-17 01:01

인공지능(AI)의 원동력은 슈퍼컴퓨터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반도체다. 이런 ‘GPU+메모리’ 조합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소모하기 때문이다. 차세대 반도체와 소형모듈원전(SMR) 등 ‘미니 원전’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반도체 트랜지스터의 3차원(3D) 구조인 ‘핀펫(FinFET)’을 처음 개발한 세계적 석학이다. 한국이 취약한 분야인 시스템반도체 설계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취임 이후 지난 2년간 백방으로 뛰었다. 약 2조원 규모의 지능형반도체·PIM(프로세스 인 메모리) 개발 사업 등이 최근 시작된 것은 이런 노력 덕이다. 이 장관은 “AI와 에너지, 자동차, 우주·항공 등 모든 산업과 국가 안보의 지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되는 양자 기술도 결국 반도체 공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지난 12일 인터뷰에서 ‘AI 퍼터베이션(perturbation·섭동)’이란 말을 자주 썼다. AI가 기술과 산업을 끊임없이 흔들며 예상치 못한 상황을 계속 연출할 것이라는 뜻이다. 반도체와 양자 기술도 이런 ‘AI 충격파’ 속에서 무섭게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높일 묘수가 있습니까.

“시스템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이 2%대를 못 벗어납니다. 투자를 많이 한다고 하지만 미국과 중국, 대만은 가만히 있나요. 이들과 차별화된 인재 배출 선순환 구조가 있어야 해요. 대학생들이 설계부터 제작, 패키징을 실제로 해보는 ‘마이칩’ 사업을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후공정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간섭 없이 신호를 보내고, 경로 최적화는 어떻게 하고, 어떻게 스태킹(적층)해야 전력 소모를 줄이고 등의 기술 가짓수가 너무 많아 기업 한두 곳의 힘으로 안 됩니다.”

▷트랜지스터 진화 움직임은 어떤가요.

“핀펫,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다음엔 상보형 전계효과 트랜지스터(CFET)입니다. n형 반도체와 p형 반도체를 수직으로 3차원 적층한 겁니다. 층층으로 쌓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는 다르게 단일 덩어리(monolithic) 형태입니다. CFET은 반도체 설계 면적을 크게 줄이고 전력 소모와 성능을 최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이에 따라 반도체 회로 전력 공급을 최적화하는 전력분배기술(PDN)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CFET이 상용화되면 나노미터(㎚)를 초월하는 반도체 시대가 열리나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GAA로 2나노 반도체를 내년 양산한다고 하는데요.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트랜지스터 속성이 입체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28나노 이하는 더 이상 게이트 길이로 따질 수 없어요. 핀펫으로는 TSMC가 3나노까지 갔죠. GAA부터는 핀펫 대비 성능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비례적 등가 개념으로 표시합니다. 2나노, 1나노, 0.5나노 등 이름이 붙어도 실제 물리적 길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K클라우드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AI를 실질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입니다. AI의 학습과 추론은 데이터에 가중치를 둬서 끝없이 곱하거나 합하는 건데요. 이걸 제일 잘하는 게 엔비디아 GPU인데 전력 소모가 너무 심합니다. GPU를 전력 효율이 좋은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로 바꾸는 것이 K클라우드 사업의 목적입니다. 관건은 NPU를 돌릴 수 있는 전용 소프트웨어(SW)가 있느냐입니다. 엔비디아의 쿠다 같은 시스템반도체 SW 개발이 엄청나게 중요해요.”

▷PIM의 장점은 뭔가요.

“PIM을 쓰면 AI 연산에 드는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충분한 경쟁력이 있어 밀고 나가려고 합니다. D(동적)램, S(정적)램, V낸드플래시 등뿐 아니라 차세대 반도체인 M(자성)램, F(강유전체)램도 넣을 수 있습니다. PIM 기술 개발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양자 기술 개발은 잘되고 있습니까.

“상용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기술도 결국 반도체 공정을 써야 합니다. IBM은 조지프슨 접합으로 만든 양자컴퓨터를 각국에 유료로 설치한 다음 손도 못 대게 하죠. 미국의 전략자산이기 때문이에요. 양자컴퓨터 연산도 자세히 보면 최적화 미분방정식입니다.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와 함께 AI를 완성할 겁니다.”

▷우주산업과 차세대 통신 등에서 화합물반도체가 중요해 보입니다.

“질화갈륨(GaN), 탄화규소(SiC) 등 화합물 반도체는 실리콘에 비해 전력 변환 효율이 높아요. 실리콘 반도체와 함께 패키징하면 다양한 센서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하고 정밀 제어할 수 있습니다. 미래 모빌리티에 아주 중요한 요소예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화합물반도체 공공 파운드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언급한 화합물반도체 파운드리는 삼성전자가 추진 중인 것과 다릅니까.

“삼성이 하는 것은 데이터센터 전력 컨트롤용 GaN 반도체고, ETRI에 설치하는 것은 고주파 대역에서 신호를 증폭하는 GaN 반도체입니다. 주로 군에서 씁니다.”

▷최근 SK하이닉스, 건설업체와 ‘차세대 원자력 수요-공급 기업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AI 퍼터베이션에 따라 모든 곳에서 어마어마한 전기를 점점 더 많이 쓰게 됩니다. 재생에너지는 어림도 없고요. 소듐냉각고속로(SFR), 용융염원자로(MSR), 고온가스로(HTGR) 등 비경수형 SMR을 빨리 개발해 산업시설 바로 옆에 둬야 합니다.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2030년대 초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상용화해야 합니다. 중요한 게 또 있습니다. 포화 직전인 대형 원전의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를 재사용할 수 있는 파이로프로세싱 한·미 공동 연구가 중단됐는데 하루빨리 재개해야 합니다.”

▷바이오 파운드리 전략은 어떻게 됩니까.

“기존 바이오·화학산업은 생산성이 낮고 연구자에게 너무 고달픈 환경입니다. 반도체 기반 AI 로봇으로 작업 환경을 바꾸면 새로운 경제 활력을 만들 수 있어요.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 부처별 칸막이를 놓고 연구개발(R&D)을 하면 이젠 백전백패입니다. 작년 R&D 예산을 조정하고 올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없애기로 한 것은 바이오 파운드리 같은 대형 R&D를 칸막이 없이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서입니다.”

▶ 핀펫(FinFET)

반도체 선폭 초미세화에 따른 전류 누설을 막기 위해 고안된 3차원(3D) 구조 트랜지스터. 전류를 여닫는 게이트(gate)가 채널 위로 지느러미(Fin)처럼 돌출돼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 파이로프로세싱

대형 상용 원전의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 부피를 20분의 1 이하로 줄이면서 소듐냉각고속로(SFR) 등 4세대 원전의 핵연료로 재탄생시키는 기술이다.

▶ PIM

연산과 저장을 동시에 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D램을 쌓은 고대역폭메모리(HBM)나 플래시메모리뿐 아니라 M램, F램 등 차세대 반도체를 넣을 수 있다.


■ 약력

△1966년 경남 합천 출생
△경북대 전자공학과 졸업
△서울대 전자공학과 박사
△미국 MIT 마이크로시스템 기술연구소 박사후연구원
△원광대 전기공학과 교수
△경북대 전자전기컴퓨터학부 교수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
△2022년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