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300억, 딸은 80억" 유언 영상 남겼다가…'갈등 폭발' [더 머니이스트-김상훈의 상속비밀노트]

입력 2024-07-18 07:00
수정 2024-07-18 13:47

자산가인 A씨는 2019년 5월 5일 사망하면서 서울 송파구와 강동구 소재 건물 3채(X·Y·Z)를 남겼습니다. 아내인 B씨와 장남 C씨, 차남 D씨, 막내딸 E씨는 2019년 12월 30일 건물들에 대해 각 상속지분별로 상속을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A씨는 생전인 2018년 1월 상속에 관한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촬영했습니다. 동영상에서 A씨는 시가 약 300억원 상당인 건물 X는 장남에게, 시가 약 150억원인 건물 Y는 차남에게 상속하고, 시가 약 80억원인 건물 Z는 딸에게 주겠다고 발언합니다. 또한 자녀들이 각자 아내인 B씨에게 매달 300만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동영상은 장남 C씨가 직접 촬영했고, 촬영 당시에는 A씨와 C씨 외에는 아무도 동석하지 않았습니다.

장남 C씨는 이같은 동영상이 녹음에 의한 유언 또는 사인 증여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상속인을 상대로 X건물 지분에 대한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를 했습니다. 다른 상속인들은 C씨의 청구대로 건물X의 지분을 넘겨줘야 할까요?


유언의 방식 중에는 공증유언이나 자필유언 뿐 아니라 녹음유언도 있습니다. 녹음은 핸드폰으로 녹음하는 것도 가능하고, 이 사건과 같이 동영상을 찍는 것도 녹음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녹음유언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민법이 정한 방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즉 녹음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 그 성명과 연월일을 말하고, 이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말해야 합니다(제1067조). 그리고 유언으로 이익을 받을 자는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제1072조). 이 사건에서 망인이 동영상을 촬영할 때 그 자리에는 A씨와 C씨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증인의 참여가 없었으므로 녹음유언으로서는 무효입니다.

실무에서는 어떤 유언이 방식을 갖추지 못해 무효가 됐을 때 그 대안으로 사인증여를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인증여는 증여자가 사망해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입니다(민법 제562조). 유언은 유언자가 혼자서 하는 단독행위인 반면, 사인증여는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에 의사표시가 합치돼야 하는 계약입니다. 사인증여는 유언처럼 특정한 방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인증여에 관한 의사표시는 구두로도 가능하고, 묵시적으로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유언이 형식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가 됐는데, 형식요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인증여를 무한정 인정한다면 유언에 엄격한 형식을 요구하는 법규정은 무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유언이 무효인 경우에 무조건 사인증여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유언과는 별도로 사인증여라는 제도를 만든 입법취지가 상실될 것입니다. 그래서 법원에서도 이 문제를 판단하는 데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 사건에서도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 사건의 1심에서는 동영상에 대해 사인증여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는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이 있다고 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했습니다(대법원 2023. 9. 27. 선고 2022다302237 판결).

“망인이 유증을 했으나 유언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효력이 없는 경우 이를 사인증여로서 효력을 인정하려면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에 의사합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유언자인 망인이 여러 명의 자녀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내용의 유언을 했으나 민법상 요건을 갖추지 못해 유언의 효력이 부정되는 경우 유언을 하는 자리에 동석한 일부 자녀와 사이에서만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한다면, 자신의 재산을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모두 배분하고자 하는 망인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고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나머지 상속인들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는 결과가 초래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유언자인 망인과 일부 상속인 사이에서만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그와 같은 효력을 인정하는 판단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A씨가 장남 C씨에게만 재산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자녀들에게도 재산을 나눠 주려고 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즉 A씨는 녹음유언을 통해 자녀들인 C씨와 D씨, E씨에게 재산을 분배하고자 했는데, A씨와 C씨 사이에서만 사인증여를 인정하게 되면 A씨의 의사에 부합하지도 않고, 나머지 상속인들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해석상 만약 유언자가 어떤 특정인에게만 재산을 준다고 유언을 했는데 그 유언이 방식의 흠결로 무효가 된 경우에는 그 특정인에게 재산을 주려는 것이 망인의 의사였으므로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망인의 의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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