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에서는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양전자단층촬영(PET)과 같은 영상 검사를 흔히 접할 수 있다. 특별한 처치나 고통 없이 질병을 찾아내고 치료가 잘 되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다. 질병의 원인과 기전을 밝히는 기초연구와 신약 등 치료기술 개발에도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MRI는 뇌졸중, 치매, 파킨슨병 등 뇌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PET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질병에 의한 뇌의 구조적·기능적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연구자들은 뇌 연구와 뇌질환 정복의 새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 초정밀 MRI 기술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산업적 규모도 작지 않다. MRI 장비 시장 규모는 2021년 63억달러(약 8조3300억원)에서 연평균 5.7% 성장해 2028년에는 94억 달러(약 12조4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가천대 길병원과 가천대 뇌과학연구원이 세계 처음으로 ‘동시 다채널-다핵종 11.74테슬라(T) 극초고자장 MRI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연구진은 경쟁국인 미국, 프랑스 등을 제치고 살아있는 원숭이 뇌를 촬영해 초정밀 영상을 얻었다. 지난 4월에는 프랑스 연구진이 개발 중인 11.72T MRI로 촬영한 사람 뇌 영상이 발표돼 국가 간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테슬라는 자기장의 세기를 표현하는 단위로 숫자가 높을수록 영상의 해상도가 높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사용되는 MRI 장치는 1~3T다.국내 연구진이 첫 개발한 11.74T MRI는 병원 영상진단용 3T MRI에 비해 1만배, 연구용 7T MRI에 비해 100배 더 선명한 뇌영상을 제공한다.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뇌’를 탐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난치성 뇌질환 연구와 정복의 획기적 전기이며 뇌의과학 발전의 중대한 이정표로 평가받는 이유다.
가천대 길병원과 가천대 뇌과학연구원은 이런 선도적 연구 성과와 연구개발 플랫폼을 기반으로 주도적 위치에서 글로벌 연구진과 경쟁과 협력에 나서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독일 율리히연구소와 공동연구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다른 해외 연구기관들로 확대할 예정이다. 아울러 난치성 뇌질환 정복을 위한 극초고자장 MRI 임상 적용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초격차 뇌의과학 기술 확보와 함께 국제 규제 조화, 국제 표준 개발, 국제 공동연구를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과는 지난 20년간 이뤄진 민간 차원의 끈질기고 과감한 연구개발비 투자와 이를 통해 축적된 고급 뇌영상기술, 보건복지부 연구중심병원 사업의 성과가 한데 어우러진 것이다. 즉 민간의 도전정신과 정부의 밀착 지원이 엮어낸 정부·민간 협력의 성공적인 모델이다.
한국이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하려면 과학기술을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 과학기술 정책과 투자의 궁극적 목표를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을 넘어 인류 난제 해결에 둬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선도국가 대열에 올라서야 한다. 11.74T MRI 세계 첫 개발과 이를 통한 글로벌 리더십 확보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